어떤 아이도 망설임 없이 태어날 수 있기를

by moon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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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 장 남은 달력은 마지막 잎새처럼 내 마음을 흔든다. 올해 초 복직하며 평일에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겠다는 계획은 굳이 평가하지 않아도 결과는 눈앞에 선하다.


나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을 달랠 겸 지난 주말 영화관을 찾았다. 지인의 추천도 있고 해서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를 관람하기로 했다. 주말 밤 TV 채널을 변경하다 독립영화관이란 프로그램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티켓을 구매해 독립영화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을까 궁금했는데, 막상 가보니 상영관은 비교적 작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줄지어 선 관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축제의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홀로 D13 열에 앉아 조용히 불이 꺼지길 기다렸다. 경쟁 부분-단편 중 첫 번째 섹션을 보았는데, <베란다>, <늙은 개>, <피부와 마음>, <여름밤의 소리>, <다운(Down)>이란 영화가 있었다. 모두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이우수 감독의 다운(Down)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다운(Down)이란 영화는 늦은 나이에 임신한 부부가 양수 검사 후 태아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한다. 기쁜 마음으로 출산을 준비하던 부부는 생각지도 못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감독은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양수 검사가 별 이상 없기를 바랐었다. 그리고 6년 후 둘째 아이 임신으로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땐 우리 부부는 이미 나이로 인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막상 고위험군이라 불리니 양수 검사를 준비하며 결과가 나오기까지 조마조마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감정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당시 결과를 기다리며 아내와 나는 이상소견이 나올 경우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지를 갖게 되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에서 부부는 태아의 상태를 듣고서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받으려 한다. 하지만 기존 검사기록을 검토한 대형병원 의사는 재검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어 수술할 수 있냐는 부부의 질문에 그건 불법이니, 자신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맞다. 법적으로 부부에게 남겨진 선택은 출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양수 검사를 통해 다운증후군 여부를 확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 여부를 알았다고 해서 법의 테두리에서는 어찌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했던 지난 고민의 흔적을 마주할수록 영화 속으로 깊이 빠졌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하고 다시 물어보지만, 여전히 답할 수가 없다. 그래도 현실에선 이미 많은 사람이 선택했을 텐데, 어떤 선택이든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을 것이며, 아직도 아플 것이라 감히 짐작해본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되자 감독과 배우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냐, 언제부터 태아의 생명권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등등 쉽지 않은 물음을 터져 나왔다. 이우수 감독과 윤경호 배우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촬영하면서 느낀 생각을 풀어놓았지만, 속 시원한 해답은 아니었다. 이어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하겠느냐는 질문이 이어졌고, 이우수 감독은 아내의 결정을 존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끝에 스치듯이 유럽에서 산다면 아이를 낳을 것 같다고 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 다른 말들은 희미해졌지만 ‘유럽에 산다면...’이라고 말한 그의 목소리는 아랫배 깊은 곳에 남아있다.


며칠 전 육아 정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읽었다. 어떤 아이도 소외됨 없이, 어떤 가정도 소외됨 없이 이 사회의 복지를 고루 누리도록 육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에 ‘어떤 아이도 망설임 없이 태어날 수 있는 사회’를 추가하면 어떨까, 라고.



* 베이비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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