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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Apr 29. 2019

오늘부터 아빠 육아를 그만둡니다.

만개했던 꽃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초록은 더욱더 짙어간다. 가정의 달을 맞아 경치 좋고 놀이기구가 있는 곳으로의 가족 여행을 준비한 아빠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한 아빠도 있겠다. 지금에서야 인터넷을 뒤진다고 예약 가능한 숙소가 있지는 않겠지만, 아직 계획을 세우지 못한 아빠라면 그럼에도 찾아야 한다. 이는 아빠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나의 아빠 역할은 이 정도였다. 평일에는 잠들어 있는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저녁에 만나.’라고 속삭인 후 출근한다. 퇴근해서는 급격히 저하된 체력으로 몸을 이끌어 겨우 책 2권 읽어주고는 보드게임은 내일 하자며 미루는 그런 아빠였다. 주말이라도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하면 좋으련만 바닥난 에너지를 보충한다며 가끔 해가 암막 커튼을 뚫을 기세로 내리쬘 때까지 이불속을 떠나지 않았고, 심지어 갑작스러운 일로 출근하거나 모임에 참석한다며 집을 나서기도 했다. 그런 내게 변화가 생겼다.     


아내가 곧 복직하게 된 것이다.    


아내가 출근한다는 것은 아내의 사회활동이 확장되고, 우리 가정의 경제 형편이 나아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내와 남편인 내가 동일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즉 이제부터 육아와 가사에 있어 동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출근하지 않는 아내 덕에 육아와 가사 분담에서 나는 많은 이득을 보았다. 환절기에 찾아온 감기는 물론이고 고열을 동반해 1주일간 등원이나 등교할 수 없는 독감에 걸린 아이들을 두고도, 나는 사무실로 전화해 쭈뼛거리며 상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모두 아내 덕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뀐다. 직장과 주거지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늦게 출근하고 일찍 귀가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한걸음 비켜선 나의 아빠 육아는 이제 끝을 맞았다.      


출근해서 조직에 적응해야 함을 걱정하는 아내 옆에서 나는 아내의 빈자리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다급히 생긴 야근과 회식에도 너그러운 아내의 허락에 여유롭게 참석했는데...

걱정하는 내 모습이 더 걱정스러웠는지 초등학생인 첫째 아이가 유치원생인 동생의 하원을 맡겠다고 한다. 늦잠 자고 늑장 부리는 동생의 모습에 감히 등원까지 맡겠다고 하지 못했지만, 하원을 돕겠다니 이 얼마나 기특한지. 대신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은 늦어도 7시 30분까지 귀가하기로 약속했다.    


다음 날 아침 7시 30분. 출근길에 엄마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이를 보았다. 화단에 핀 꽃이 어제보다 더 자랐는지, 짹짹거리는 참새들은 밤새 잘 잤는지도 궁금한 아이는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옮기지만, 이내 직진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면 아침마다 나 또한 둘째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잠시 멈추어 같은 시선으로 철쭉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길 감히 바라본다.    


다시 맞벌이 부부로 돌아가는 것. 아내의 새로운 시작에 설레기도 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함이 걱정되기도 하며, 돌봄의 손길이 줄어든 아이들에겐 미안해진다. 그러다 덜컥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아내와 둘이서 해결하려던 생각을 내려놓는다. 토닥토닥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는 우리 가족 넷이서 육아와 가사라는 미션을 좌충우돌하며 풀어갈 생각에 살짝 기대감이 생긴다.      


그 출발점에 선 나는 이제 아빠 육아를 그만두고,

그냥 육아를 하기로 했다.



* 베이비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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