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출

아내가 홀연히 친구를 만나러 가버린다면

by moonlight


2개월간 준비한 프로젝트 발표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팀장이 오늘 갑자기 그만두었다. 1주 전 부서를 옮긴 나와 입사 1개월 된 신규직원, 이렇게 둘이 남았다. 어후~

보통 아빠들에게 젖먹이와 어린이 한 명을 두고 아내가 외출한다면 이 정도의 막막함을 느끼지 않을까?


며칠 전부터 아내가 말했다. 호주에 사는 친구가 잠시 귀국해서, 오랜만에 친구들이 저녁에 모이기로 했다고.
물론 나는 쿨하게 "오~ 당연히 가야지. 걱정 마." 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18개월 된 둘째가 걱정되었다.

종종 어리광을 피우는 첫째는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물론 나에게 "놀아줘"를 무한 반복하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다.
대신 평소에 잘 먹고 잘 노는 둘째가 요즘 부쩍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서인지 피곤하거나 졸릴 때면 엄마만 찾기에 힘들겠다는 느낌이 팍 왔다. ㅠㅠ

그 날. 어쩌다 보니 첫째 친구가 아침부터 놀러 왔다. 맞벌이 부부인데 모두 출근하게 되어 우리에게 연락한 것이다. 아는 처지에 당연히 보내라 했고, 아내는 잠시 나에게 미안해했다. 첫째 친구가 오자 음식과 놀이 등을 챙겼다. 급기야 내게 잠시 쉬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그때는 몰랐다. 이때 충분히 쉬어야 했음을...


아내가 현관을 나서자 아이들은 점점 자유로워졌다. 언니들과 놀고 싶은 동생이 잠시 거실로 나온 사이 녀석들은 방문을 잠근다. 이해는 하지만 속상해 우는 둘째를 보면 8살 아이들이 야속하다. 결국, 내가 함께 놀며 둘째를 돌보거나 '나쁜 공주2'라는 새로운 역할을 한다는 조건으로 겨우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었다. 에효~

저녁 6시가 되자 둘째는 점점 힘들어하며 오버를 시작하고, 언니들은 배고프다며 저녁 식사를 재촉한다. 돌보며 차리기를 반복한다. 식사가 끝나자 다시 놀이를 시작하는 아이들 뒤로 나는 겨우 몇 숟가락 입에 넣었다.
약속한 7시다. 더 놀겠다는 아이들을 단호하게(?) 제압하며 첫째 친구를 배웅한다. 이제 두 명 남았다.

돌아오자 두 녀석을 욕실로 보낸다. 첫째가 둘째 씻기기를 도와주지만 예상처럼 역부족이다. 머리 감기를 너무 싫어하는 둘째는 평소보다 좀 더 울고서야 겨우 진정했다.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히니 제법 깨끗하고 귀엽다. 잠시 정신적 안정을 위해 TV로 만화를 보여주고는 서서히 잠을 유도한다.

"이제 언니에게 잘 자라고 인사해야지~ 잘 자!" 그러면
손을 흔들며 "잘 자~" 하는 평소와 달리 "엄마~ 엄마~ 으응~ 으악!"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계속 뒤를 돌아 현관을 쳐다보며 악쓰기를 시작한다. 예상대로 기적은 없었다.

첫째가 달래고 다시 TV를 켜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하다가 결국 엄마 마중을 가기로 한다. 아기 띠로 안아 바깥을 서성이는데, "으앙~ 엄마!" 하며 울다 쉬고를 반복하고는 지쳐서야 겨우 잠이 든다.


11시가 되자 두 명 모두 꿈나라로 간다.
아~ 이제야 찾아온 혼자만의 시간. 우와~ 차 한 잔 마시며 나에게 집중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제야 문득 아내가 궁금해졌다. 근사한 식당에서 낄낄 깔깔 웃음이 넘치겠지. 십 수 번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아내에게 전화할까 했던 순간을 잘 참아냈다. 하하.

참, 아내의 외출은?
가기로 했던 식당이 일찍 닫는 곳이어서,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길을 잘못 들어 헤맸고, 주차 기계 오류로 20분을 넘게 차에서 대기하다 결국 떡볶이 레스토랑(?)에 갔다.
그곳에서 5만 원어치의 떡볶이를 먹었다는데, 배는 부르지 않았단다.
뭐가 들었는지 너무 궁금해 물었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을 대신한다.

아~ 뭔가 모르긴 해도 곧 다시 외출할 것만 같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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