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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Aug 27. 2019

류현진에게 배우는 육아 기술

요즘 나의 관심사는 단연코 류현진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LA 다저스의 선발투수다. 2013년 미국에 진출해 2015년과 2016년에 투수에게는 치명적이라는 어깨와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그런 그가 올해 평균자책점, 다승 등 투수 순위를 정하는 여러 지표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자연스레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사실 아이들에게 ‘출렁이’라는 놀림을 받는 뱃살을 가진 나는 운동엔 젬병이다. 하지만 보는 야구라면 남다르다. 그중에서도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빼어난 실력을 뽐내는 류현진에 대한 애정은 새벽잠도 포기하게 만든다. 운동선수로 서른이 지난 적지 않은 나이에, 수술도 했기에 올해 초 시즌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특히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들이 인정받는 상황에서 제구력만으로는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시즌의 절반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강속구 대신 직구, 커브 등 볼 종류에 따라 속도를 달리하고 철저히 원하는 지점에 공을 던지는 능력으로 미국 야구의 역사를 소환할 만큼 놀라운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신비로운 마음으로 그를 보고 있자니 문득 나의 육아가 떠오른다. 나는 자칭 파이어볼러 fireballer(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에 가깝다. 물론 상대를 제압하는 강속구를 뿌리지는 못하지만, 눈앞의 문제 해결에 서두르는 면에서 말이다. 속전속결의 정신으로 온 힘을 다해 해결책을 던져 보지만 의도와 달리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배탈 난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토록 할 것인지, 집에서 돌볼 것인지. 연차를 사용해 돌본다고 하면 아내가 사용할지 아니면 남편인 내가 할지. 그리고 다음 날도 아프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처음 몇 번이야 아내에게 미루거나 싫은 내색 보이면 '내가 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진정시켰지만 그리 평화롭진 못했다. 아내와 나의 상황을 파악하고 조율하며 문제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제구 능력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며칠 전 생일파티가 있었다. 끝난 후 거실 바닥은 바람 빠진 풍선과 찢어진 종이, 잘게 부스러진 과자 가루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차근히 정리하는 대신 무심히 툭툭 발로 차고 지나치는 녀석을 보니 불쑥 울화가 치민다. ‘대체 몇 살인데, 이제 스스로 정리할 때도 되었건만! 어이구!!’ 하는 마음이 강속구가 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1분이 채 지나기 전에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후회하지만, 그럴 순 없다. 아이에게 어질러진 거실 상황을 인지시키고 함께 혹은 스스로 정리할 시간과 기회를 주면 될 터인데, 나의 감정은 파이어볼처럼 치솟기만 한다.     


류현진의 성적을 보면 지난겨울 체력과 투구 기술에 대한 훈련이 얼마나 혹독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감히 그 능력을 모방하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가 경기를 준비하는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홀로 그라운드에 앉아 멍해 보이는 자세로 명상을 하는 것이다.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그 위치에 공을 뿌리기 위해, 그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있었다.


나의 육아도 그럴 수 있을까. 아내에게 더 많은 역할을 기대하고, 아이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도록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맞닥뜨린 현실을 직시하고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분별한 후 다듬어진 감정으로 담담하게 그 역할을 해내는 일상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오늘 퇴근길. 현관문을 열기 전 깊고 긴 호흡을 해야겠다. 아이들을, 육아 환경을 컨트롤 control 함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한 템포 멈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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