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의 시작
시월이다. 집 앞 대추나무에 대추가 많이 익었다.
조롱조롱 매달린 녀석들을 고개 들어 한가로이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다니.
내가 꿈꾸는 육아휴직은 이렇게
매일 곁을 지키는 나무도, 스치듯 사라지는 바람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몸에 담는 여유로운 일상이었다. 그런데
그 시작의 날 오전 3시.
옆에서 자던 첫째 쑥쑥이가 나를 깨운다. 어둠 속에서도 나는 녀석의
잔뜩 불편하고도 어색한, 그래서 혼자선 어찌할 수 없는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급히 화장실로 향했지만, 푸악~
속이 불편했던지 녀석은 토했다. 그리고 한동안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쑥쑥이의 옆, 좁은 공간을 오가며 젖은 옷과 이불을 빨았고 화장실 바닥 청소까지 했다.
그리고 나니 4시.
다시 자라는 아빠 말에, 쑥쑥이는 이 시간에 다시 자는 것은 토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며 눈을 찡긋한다.
팔다리를 주물렀더니 금세 스르르~ 그렇게 쑥쑥이를 재우고 누웠는데 눈이 감기지 않는다. 하하.
녀석의 말은 이 시간에 아빠가 다시 잠드는 것은 자기가 새벽에 토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이었나. ㅋㅋ
벌써 8시.
깜빡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학교 갈 시간이 훌쩍 다가왔다.
쑥쑥이를 겨우 깨워서 아침을 먹였는데, 집을 나서기 전 다시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결국 5분, 지각이다. ㅠㅠ
어쨌든 첫째가 등교를 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둘째와 여유롭게 식사한다. 하하 호호.
그래 이 맛이지. 어느덧 시간이 흘러 둘째가 낮잠을 자고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지난해 가을 얼려 두었던 홍시를 꺼내려 김치냉장고를 열었다.
따뜻한 떡과 함께 시원하게 먹으려 군침부터 삼키던 나에게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몰려왔다.
홍시의 온몸은 연인의 무관심에 멍이 든 것처럼 검게 변하고 있었다. 허걱.
검은 멍으로 보아 최소 1주일은 냉동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여행을 가기 전 전원코드가 빠졌는데, 항상 있던 것이니 잘 움직이고 있겠다고 믿고 살펴보지 않았다.
까만 멍이 든 홍시와 이를 품고 있던 녀석에게 미안해진다.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아빠의 무관심 속에 멍이 들었을 아내와 아이 같았다.
홍시를 버리고 냉장고를 치우고 냄새를 보내는 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도 우리에게 생긴 멍은 그 이상의 치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4시.
쑥쑥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 돌아오면 또 함께 놀자며 입이 쭈욱 늘어날 텐데.
이를 무마할 비장의 무기, 녹여먹는 홍시도 없으니. ㅠㅠ
설마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들지는 않겠지? ㅋㅋㅋ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