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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동계올림픽이 끝났죠.
우리 선수들의 경기만큼이나 이목을 끌었던 것이 있는데요.
러시아 피겨선수 발리예바의 도핑 약물 검출입니다.
할아버지 심장약이 검출된 것이라고 했고 러시아도핑위원회는 발리예바의 징계를 철회했죠.
국제올림픽위원회, 세계반도핑기구, 국제빙상연맹이 이의신청을 했지만
기각되고 발리예바는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됩니다.
이를 두고 직장 동료 A가 말하더군요.
한 동료와 담소를 나누다 발리예바가 불쌍하다는 발언에 심히 흥분했답니다.
그게 말이 되느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었어요.
모든 선수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노력한 무대에 규칙을 어긴 사람이 선다는 것, 누군가의 자리를 공정하지 않게 차지한 것은 비난받아야 한다는 거죠.
어때요? A의 말이 맞죠!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구하는 A에게 나는 되묻습니다.
그 동료는 왜 발리예바를 불쌍하다 여겼을까요?
불쌍하다는 표현이 발리예바의 도핑 결과에 면죄부를 주자는 의견을 아니었을 테지요.
16세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라는 것, 성적에 집착한 주위 어른들 혹은 사회 시스템에 의한 피해자일 수 있다는 시선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신문 기사에도 발리예바에 대한 동정론이 있더군요.
우리는 종종 사람이 행한 결과를 두고 평가합니다.
특히 사회 가치에 맞지 않으면 원색적으로 비난하죠.
올바르지 않은 행위를 한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삶 전체가 비난받아야 할까요.
또 그런 행동을 초래한 원인을 찾아보다 측은한 마음을 갖는 것조차
옳고 그름의 잣대로 검열받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적어도 한 번은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또 누군가는 어떤 점에서 그를 불쌍하다 느끼는지 물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도핑 약물을 복용한 자가 없는지
이를 알고도 묵인하고 조장하는 시스템은 아닌지,
나는 크고 작은 도핑의 유혹에서 얼마나 당당한지를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비난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스텝
다음 스텝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불쌍해지지 않으려면요.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