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의 육아 수다

첫 번째 이야기

by moonlight


저녁 7시 신사역 8번 출구. 마흔을 앞둔 남자 넷이 모였다.
가로수길을 앞에 두고 사잇길로 들어 작지만 안전한 장소에 몸을 넣고서야 비로소 인사를 나눈다.

"오늘 어떻게 얘기하고 나왔어요?" 하는 물음에, 다들

"여보~ 나 오늘 늦어요. 야근이야. ㅠㅠ"
"미안해. 갑자기 부서 회식이 잡혔어."
하며, 기쁨을 삼키며 우는 듯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말했다고 했다.

지난 주말 네 가족이 모여 엄마, 아빠, 아이들이 각각 무리 지어 놀았고,
어쩌다 보니 아빠들이 아이들의 저녁 식사를 챙기게 되었다.
제대로 저녁을 즐기지 못했다는 묘한 공감대가 아빠들만의 뒤풀이를 은밀하게 이끌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
특별히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몹쓸 핑계로 둘러대고 아빠들만의 모임을 한 것은 아내의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두 명씩 자녀가 있는데 두 녀석의 식사와 샤워, 놀이, 재우기를 온전히 아내 혼자 감당해야 하니, 그런데 꼭 필요한 일이나 회식이 아닌 것 같다면 아내에게 말하기 소심해진다. ㅠㅠ.

아빠들은 집 근처에서 먹던 치맥 대신 소맥으로 시작했다.

우선, 아빠들의 모임인 만큼 더 추워지기 전에 가야 할 아이들과의 야외놀이 계획을 이야기한다.

"캠핑은 어렵겠죠? 놀이공원은 어때요?"
"가까운 곳에 아이들이 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을 거예요. 음식은 간단히 준비하고."
"이제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잘 노니까, 넓은 공간으로 가시죠. 저희도 맥주 한잔 하며 쉬게."
"1박 2일은 어때요? 엄마들도 같이 가요? 그냥 아빠들과 아이들만 갈까요?"
"그러면 첫째만 같이 갈까요? 둘째는 좀 어려서.ㅋㅋㅋ"

우린 모두 "(둘째를) 돌봐야 하니 우리끼리 한잔 할 시간이 없잖아요."라는 말이 생략된 줄 알았고 함께 웃었다.
각자 한 장소를 생각해 주말에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한 다음, 본격적인 푸념이 이어졌다.

사건은 지난 주말 한 아빠가 아내에게 잠시 둘째를 맡기면서 너무 다정하고 공손하게(?) 부탁을 한 것이 엄마들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다들 한 소리씩 들었다.

"그날 와이프가 집에 와서 날 잘못 길들였다며 푸념하지 뭐예요. 저 이사 오기 전에는 가족끼리 볼링 칠 때 스텝만 알려줘도 최고 다정한 아빠라고 인정받았는데. 여기 와서 완전 꼴찌 되었어요. ㅠㅠ."
"맞아요. 저의 아내도 그 이야기하던데. ㅋㅋ"
"저도요. 근데 왜 그러셨어요?"
"그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전 잘 기억이 안 나요. ㅠㅠ"
"에이. ㅋㅋㅋ. 같이 만나면 안 되겠어요. ㅋㅋㅋ"

자연스레 육아에 관해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아이들은 누구랑 자요?"
"저희는 둘째가 저랑 꼭 붙어 있어요. 어릴 때 제가 교대근무여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렇게 놀다 보니 이제 제 껌딱지가 되어서, 지금은 주간 근무하는 데 집에 와서 쉴 수가 없어 정말 힘들어요."
"저는 딸 둘이 모두 저랑 자요. 한 번은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내가 아이들에게 '이 녀석들이! 잘 시간이잖아. 빨리 들어가.' 하며 소리치지 뭐예요. 아이들도 나도 멘붕. 지나고 보니 저도 그때 맞불을 놨어야 했는데. ㅠㅠ"
"아~ 그래요. 저는 혼자 안방에서 TV 보고 있고, 아내가 아이들을 재워요. ㅋㅋ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아빠들만 모이니 모든 대화가 아빠 중심적이다. 그래서 아빠들은 묘하게 격한 공감을 하며 민망한 웃음을 맘껏 펼친다.
다들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인간이기에 가장 인간적인 아빠들.
차마 속내를 가족에게 이루 다 말할 수 없지만, 아빠들끼리의 푸념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된다.

아빠들의 육아 수다는 은밀히 지속하여야 한다. 반드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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