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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Jun 01. 2023

피해자와 가해자

점심식사 시간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칸막이가 없어지고 마주 앉아 식사를 합니다. 아직도 조심스럽지만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요. 맞은편에 앉아 식사하는 동료가 밝게 이야기를 하다가 툭하고 제 신발을 건드립니다. 저 또한 밝게 웃으며,


"제 발은 왜 차는 건가요?"


하고 물었죠. 이내 "어머, 제가 발을 찼다고요? 억울해요."라고 합니다.  

이에 질세라 "아니, 억울한 건 저잖아요."라며 대꾸합니다.




정말 억울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자칭 피해자인 저는 분명 앞사람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했어요. 식당테이블 아래에서 일어난 일이라 주위에 목격자도 없고 CCTV로도 증명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분명 저는 툭하고 차였거든요. 그런데 타칭 가해자인 그는 자신이 저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어디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는 너무 억울해합니다. 가만히 밥 잘 먹고 있는데, 앞에 앉은 자가 뜬금없이 '네가 내 발을 찼으니 사과해라.'라고 하니까요. 자신이 했다는 것은 증거도 증인도 없는 상황에서 상대의 주장만으로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으니 그 또한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사실 신발끼리 툭 부딪힌 거라 오버하며 자신이 더 억울하다며 웃어넘겼지만,   

다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나는 상대가 부당한 업무지시나 인격모독 같은 갑질이라 여기는데,  

상대는 통상적인 업무지시에 평소와 같은 말투였다고 하고

나는 그가 성적으로 희롱을 한 것 같은데, 상대는 배려의 표현이었다고 하는 거라면요.


증인도 없고 CCTV도 없는 곳에서 둘만 있는 공간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면 이를 어떻게 할까요?


인사팀장으로 일하면 고충심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의 간사로 참석할 때가 있어요. 증거도 증인도 없는 경우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각자의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나뉘었던 사례가 았었죠.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상대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거다.  

vs

무심코 던진 돌이라지만 나는 너무도 큰 상처를 입었다.

몰랐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한들 내가 입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정신적 피해를 이유로 병원 진료를 받으며 피해자임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각자의 논리와 감정에 공감이 갈 때가 있습니다.(물론 잘잘못이 뚜렷하게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요.) 서로 맞는 말을 하고 있는데, 합의에 이를 것 같지 않은 커다란 벽 앞에 선 막막함이 있죠.

이럴 때면 그들이 서로 한걸음만 물러나 상대의 사정을 살피는 여유를 갖기를 기도하죠.

나의 강한 격려가 타인에겐 거친 핀잔일 수도 있고, 나의 어색한 침묵을 상대는 암묵적 동의라고 받아들였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기를요. 무조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양보하라는 것이 아니라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타인의 입장을 한 번 헤아리고 나의 요구사항과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재정리해서 대응하자는 겁니다.  


어때요?  

사람에 대한 지나친 욕심인가요.  




덧.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입장에서 살피지 않았다고 제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저 역시 조직에서 부여받는 역할이 있잖아요. 이를 수행함에는 개인적 친분이 침범할 수 없는 사정이 있잖아요. 제 입장을 한 번이라도 헤아렸다면 그렇게 말하진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을 갖다가도 그도 지금 마음이 너무도 힘들어 누구에게라도 분을 풀어야 했고, 그게 나였던 거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어차피 우린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요.



Image by Arek Soch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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