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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Jun 12. 2023

10점 인생

2년 만에 청사 외곽 유리창 청소를 했습니다.


제가 직접 한 것은 아니고요. 유능한 업체에서 안전하게 해 주었습니다. 담당 동료의 수고로 주말 작업을 한 덕에 월요일 출근길에 만난 청사는 말끔해 보였어요.      


'와~~ 깨끗하다'     


생각하며 사무실에 들어왔는데요. 누군가는 청소가 되지 않은 안쪽면의 먼지를 이야기합니다. 함께 먼지가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한쪽이 깨끗해지니 다른 한쪽의 티끌이 도드라져 보이지요.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미화원을 찾아가, 특히 세월을 먹은 굳은 때를 확인하며 청소를 요청합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 제게 상담을 신청하더라고요.


미화원 두 분과 저는 마주 앉았습니다.

미흡한 부분은 청소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몇 달 전 있었던 이야기를 꺼냅니다.      


함께 일하는 사무실 직원 중 한 명이 지나던 미화원을 '아줌마'라고 부르며,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이곳이 더러우니 청소해 달라고 했답니다. 심지어 어투는 혼잣말인데 데시벨은 상대가 딱 듣기 좋을 정도로 맞추어 전에 하던 분은 깨끗했는데...... 라며 비교까지 했다고요.


다른 어느 날은 상사의 이름을 빌어 이곳저곳을 청소토록 지시했는데, 상사는 핑계고 그저 자신이 무언가를 지시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상사에게 가서 청소지시 여부를 직접 물어보겠다고 하자 그 직원이 뭐 그런 것까지 물어보냐고 했다고 하니까요.      


당시 상황을 정확히 복원할 수 없지만 말하는 이의 말투와 표정에서 감히 짐작해 보건대, 하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말하는 이의 눈시울이 촉촉하고, 목소리는 떨립니다.     


그 직원에게 지적을 받으면 여기저기 더 신경 써서 청소하는데, 그럼에도 지적이 끊이질 않으니. 오늘은 또 어떤 지적을 받을지 심장이 쿵쾅거린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멍해진 저는 잠시 멈춤을 선택합니다.     



      

회사에서 지적받는 일은 일상이지요. 비단 미화원만이 아닙니다. 저 또한 상사나 동료로부터 여러 지적을 받습니다.

저는 주로 보고서를 쓰는 일을 하는데요. 한 번에 통과하는 일은 없습니다. 전체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적인 내용에서 수정사항을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런 상사를 만나기는 로또 맞을 확률일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터무니없는 보고서를 작성했느냐. 또 그렇게 인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고치고 또 고치고 완성본이라고 돌아온 최종본을 보면

제가 처음 만든 거랑 다른 부분을 찾기도 어려운 경우도 있거든요.     

 

음...... 남들이 뭐라 해도 전 90점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꽤 괜찮은 점수죠?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획득한 90점이 아니라 모자란 10점에 집중해서 얘기하죠.(120점, 150점을 할 수 있고, 또 원하는 사람에게는 한참 더 부족하지만요.) 상사가,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가 100점일 수도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90점을 거치지 않고 100점으로 갈 수 없잖아요.    

   

아 참! 디폴트가 0이 아니라 100인 사람도 있죠. 이런 분들은 100점에서 평가를 시작합니다. 틀린 부분,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감점을 하는 거죠. 이런 경우 초과달성하지 않고서는 잘해야 본전입니다. 그럴수록 부족한 10점에 몰입하게 되고요.


만약 누군가의 어제가 89점이었고 오늘이 90점이라면 그 성장을 축하하고 응원해줘야 하지만, 현실 직장에선 그렇지 않습니다.(지금의 저에겐 이런 기대조차 없으니까요.)     


그날 미화원과 저는 우리에게 부족한 10점을 기꺼이 채우려 노력하자고 했어요.

다만, 이미 우리가 획득한 90점을 잊지는 않고서 말이죠.


누구에게나 부족한 10점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인생이 10점짜리는 아니잖아요.

     

미화원에게 미진한 부분을 지적한 이는 타인의 업무까지 꼼꼼히 챙겼다며 주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10점이 있지요. 바로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굳이 남과 비교하고 하대하는 언행 대신 사실에 대한 확인과 정중한 요청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어쩜 그는 소통이란 측면에서는 부족한 10점이 아니라

쌓아온 10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남은 90점을 어떻게 채워갈지.....

감히 걱정해 봅니다.



Image by 41330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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