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2/2)

by moonlight

#2

영화가 종반으로 가면서, 기차는 점점 부산역에 가까워지고 살아남은 자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손을 맞잡고 서로 당기고 밀어주던 이들은 하나 둘 좀비가 되고 또 달려든다. 잠깐의 고요한 긴장 속에서 석우는 수안과 마주 앉았다.



석우 : 우리 수안이 오늘 생일인데, 걱정하지 마. 아빠가 엄마한테 꼭 데려다줄게.

수안 : 아빠는 안 무서워요?

석우 : 무서워. 아빠도 무서워.

수안 : 아까는 정말 무서웠어요. 아빠를 다시는 못 보게 될 것 같아서.



일곱 살이었던 것 같다.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기억해낼 수 없지만 TV도 볼 수 없었고 책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창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엄마는 일이 있어, 잠시 다녀와야 한다고 하신 것 같은데. 엄마가 밖으로 나가신 순간부터 나는 창으로 밖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덜컥 나도 모르게 “엄마”하고 소리쳤다. 무서웠다. 나는 혼자였고, 이 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외침이 시끄러웠는지 아랫집 창문이 열리더니 두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창문을 닫고 몸을 숙였다.


수안처럼 무서웠던 나는, 오늘 석우처럼 무섭다.


어제 작성한 기획안이 형체를 알 수 없게 뜯기는 수모를 당할까 봐, 나만 빠진 회식에서 그들만의 은어를 만들었을까 봐, 지독히 수줍은 많은 내가 대중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까 봐. 어쩌면 이렇게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직장에 더 이상 내 자리가 없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석우가 있는 9호차에서 수안이 있는 13호차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 사이에 만난 수많은 좀비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석우는 힘들고 두려웠을 것이다. 대신 나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상이 끊임없이 달려드는 좀비가 되어 나와 가족을 삼켜버릴 것 같아 두렵다. 아빠는 그렇게 두렵다.



결국 아빠 석우는 딸 수안과 이별한다. “가지 마. 아빠 가지 마. 제발. 나랑 같이 있어.” 하는 아이를 두고 돌아서야 하는 그는 수안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회상한다. 이 부분을 두고 누군가는 삼류 신파 영화라고 했다. 친절하게 울어야 할 때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눈물을 훔칠 약간의 시간도 할애해 준다고 비꼬았다. 그런데 내겐 취향저격이다. 아마 내가 가진 삼류의 감성 때문이겠지.


아내가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 내가 아이를 데리고 등원한 적이 있다. 허겁지겁 제대로 된 헤어짐의 인사도 없이 덜컥 아이를 원장 선생님의 품에 넘길 때. 아빠에겐 아직 정도 들지 않았을 녀석이 서럽게 울었다. 그때 처음 아이를 보며 울컥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은 이런 이별의 순간을 겪는다. 특히 맞벌이여서 아침 일찍 등원시켜야 하는 경우 밝은 얼굴로 엄마의 출근을 배웅하는 아이는 육아휴직을 한 아빠의 수 정도가 되려나. 영문도 모르고 헤어짐을 강요받는 아이의 우는 소리 “으앙”은 “가지 마. 나랑 같이 있어”라는 뜻을 가진 의성어일지도 모른다. 퍼지는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돌아서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와 아이를 지킨다는 것의 의미, 보호하고 키우는 모습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부산행>은 많은 은유를 갖고 있다. 감독의 의도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의 시선이 흘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수안이 부산에 도착하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아빠에 들려주고 싶었던 <알로하 오에>를 부르는 순간, 나와 가족이 나는 어디로 가는지 찾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서울행인지, 부산행 인지도 모르고, 때론 바다와 때론 산과 함께 하나 되기를 어렴풋이 꿈꾸면서 여전히 2호선 순환열차에 몸을 싣고 있던 나는,



열차에서 내리기로 한다. 지금 여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