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충성한 D+184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혹한기 행군을 했다.
2월 5일 오후 18시부터 2월 6일 03시까지 이어진 긴 여정이었다. 훈련소 때와는 달리 군장은 메지 않고, 방독면 가방 하나만을 들었다. 전차병의 특혜이다. 몸이 가벼워 기분이 좋았다. 짐을 다루는 데 익숙해진 몸은 오히려 그 가벼움에 적응하지 못할 정도였다. 방독면 가방에 이것저것 준비물을 넣으며, 살짝 긴장한채 선임들의 준비를 기다렸다.
혹한기 행군을 준비하는 선임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선임은 여성용 스타킹을 구해와 신었고, 어떤 이는 양말을 다섯 켤레나 준비해 휴식 시간마다 갈아 신는다고 했다. 발바닥에 알 수 없는 연고를 듬뿍 바르고 출발하는 이도 있었고, 여름용 대나무 깔창을 전투화 안에 넣는 선임도 있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모두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야간행군 훈련과 추위를 견디려는 노력이었다. 말없이 준비하는 모습 하나하나에서 이 훈련이 얼마나 고된지 느껴졌다.
행군을 시작했을 때는 밖으로 나와서 그런지 어쩐지 소풍 가는 듯한 묘한 설렘이 있었고, 몸도 가벼워 할 만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간에 간식으로 라면을 먹고 난 뒤부터 손끝이 점차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감각이 흐려지고, 손가락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밤새 걸으며 피로는 몸 깊숙이 스며들었고, 졸음은 눈꺼풀을 천근만근으로 만들었다. 졸음으로 인해 대열을 이탈해 걷는 병사가 생기기 시작했고 나 역시 춥고 발바닥에 이상 증상이 조금씩 느껴져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직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행군을 마치고 새벽시간 부대에 도착했을 때, 따뜻한 캔 커피와 팥빵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난로보다 따뜻한 그 팥빵 하나가 전하는 위로는 컸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녹았다. 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훈련을 끝냈다는 뿌듯함, 그리고 내가 견뎠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내년에 한번 더 해야 하는 이 행군은 고됨 그 자체였지만, 내 안의 어떤 것을 단단하게 바꿔놓은 좋은 경험이었다.
✍️ 기억의 조각
손난로보다 따뜻했던 그 순간.
팥빵일 수도 있고,
곁에 함께 걷던 전우일 수도 있다.
추위는 언제나 있었지만,
나는 그 무언가의 온기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 스물한 살, 그 낯설고도 선명했던 시간을
매주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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