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목욕탕> 오합지졸이어도 '가족' 맞습니다

湯を沸かすほどの熱い愛(2017)

by 디디



엄마의 유전자가 도와줬어

- 사츠미 아즈미










01. 엄마의 교육법


아즈미가 교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후타바는 단 한 번도 아즈미를 위해 대신 나서는 법이 없었다. 괴롭힘으로 엉망이 된 딸이 숨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허술한 말에 아프게 속아주기도 한다. 교복을 빼앗긴 짓궂은 장난에 학교를 나가지 않겠다는 아즈미가 숨지 못하게 아즈미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부러 몰아붙이기도 한다.


언젠가 목욕탕 카운터에 자신을 대신해 혼자 자리하게 될 아즈미를 위해 자신이 가진 '강인함'을 물려주기 위한 자립심을 가르친다. 아즈미가 그 어떤 상처에도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딸의 뒤에서 못다 한 걱정을 마저 내쉬기도 한다. 엄마도 딸에게 숨기는 것이 존재한다. 그렇게 서로를 위해 기꺼이 숨기기도 한다.






02. 총 3번의 결혼


이 이야기는 잔잔할 것 같지만, 반전의 연속이고 감정의 파도타기다. 후타바가 과연 '암'에 걸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극 중 '카즈히'만은 절대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힐링'으로 둘러싸인 이 영화에서 유일한 악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개글의 '철없는 아빠'라는 말은 그를 너무 미화시킨 단어가 아닐까 싶다.


이와 비슷한 가족의 형태는 여럿 숨어 있다.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청년 '타쿠미' 또한 생모의 얼굴을 알지 못 한 채 이복동생들을 여럿 가졌다. 그리고 후타바 또한 끝내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러 간 날까지 버림받고 만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는 건 받은 상처에 비해 너무도 가벼이 쓰인다. 상처를 받은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기에는 '사정'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단순하다. 그저 비겁한 선택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면 누군가의 상처 한켠을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행복목욕탕>이었을까. 아마 이곳에서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이 따뜻하게 아픔을 다 씻어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곳이 아닐까. 그리고 말 못 할 비밀을 안고 온 이들에게 온기가 되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큰 스트레스 사건을 뒤로하고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따뜻한 물에 담그는 것만으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03. 변하지 않는 이름


아즈미는 끝내 자신의 생모를 '기미에'를 아줌마라고 부르고 후타바를 '엄마'라고 표현한다. 양모 후타바의 울타리 속 부족함 없이 자란 딸 '아즈미'는 절대로 외톨이로 두지 않을 거라며 후타바의 마지막 곁을 지킨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진정한 가족 하나 없던 후타바의 마지막은 따뜻했을 것이다.


가족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따뜻한 비판을 담은 영화였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가족을 원했을 테지만, 끝내 자신의 가족은 한 번도 없었던 세상의 외톨이였던 '후타바'는 잠시 딸을 빌렸다고 생각했지만, 아즈미의 엄마는 변하지 않았다. 버림받았던 과거를 선택할 수 없었듯이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사실조차 바꿀 수 없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엄마로서, 가족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미소를 잃어버린 아유코가 너무 빨리 커 버린 모먼트도 가슴 아픈 일 중에 하나였다. 아무런 잘못 없는 아이가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갈 곳을 잃고 눈칫밥을 더 먹게 된다. 배워야 할 것을 제쳐두고 상처를 가장 빨리 알아채며 성장한다.


"아유코 여기 있었음"

아이에게 거짓말은 평생의 상처다. 버림받았다는 사실보다 두려운 건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생각 외로 아이들은 단순하지 않다. 이런 여운 남는 메시지가 사회의 큰 울림으로 다가왔으면 한다.






04. 미뤄왔던 과제를 끝낸다


일본 영화는 '절망'에 한도를 두지 않는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게 너무도 당연한 필연이기에 자주 써먹는(?) 기법일지는 몰라도 대체로 '슬픈'영화는 클리셰처럼 '죽음'이 반복되곤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앞으로의 정해진 날들에 우울해 있지 않는다. 특히 '후타바'는 자신의 강인한 성격만큼 치료를 미뤄두고 마음속에 담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해결하고자 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혼자'라는 공포감이다. 그런 그녀가 그 사실을 무덤덤히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슬픔이 쌓여 강해졌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세상을 원망할 수 있었지만, 소중한 것을 알고 있던 '후타바'는 정해진 대로 삶을 살지 않았다. 그게 그녀가 진짜 강한 이유다.





죽으면 다 용서할 테니 뒷일을 잘 부탁해
- 사치노 후타바




글|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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