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의 온도 12. 요정의 샘

by 소요 김영돈

운명이 소개한 사람들이 있다. 42년 세월을 함께 달려온 친구들!!

사이공 베트남, 너를 린이라 부른다.

포탄의 소나기에도 린(통일 베트남을 상징함)은 죽지 않고 싹을 틔워 뿌리내리고 있다. 성장률 12퍼센트의 질주, 자본주의의 화염 속에서 태어난 린은 반짝이는 눈과 빛나는 손톱과 맨발을 가졌다. 온 땅이 화염에 휩싸여도 린은 땅 속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자본주의의 심장에 불을 댕겼다. 카페, 레스토랑, 이발소, 접골, 안마 아카데미, 조선면옥, 맛찬들 장작구이...... 닥치는 대로 일하고 틈나는 대로 한국어를 공부한다. 파병의 흔적은 흉터로 남았다. 아물었다. 건기가 도래하면 도진다. 황톳빛 자본주의를 오토바이에 싣고 지프에는 모래를 퍼 날랐다. 야자수로 햇빛을 가리고 바퀴로는 생명의 뿌리를 다지며 지프차는 화가 난 듯 달린다.

다시는 자본주의와 포탄에 농락당하지 않을 기세다. 무이네, 모래사막, 동굴 깊숙한 곳에 싹이 텄다. 뿌리에 맞닿은 별이 가루가 되어 해변에 쌓이면 사구의 땅 무이네에는 색색의 (황색 흰색 오렌지색) 모래바람이 분다. 저 높은 언덕에 모래성을 짓고 성 바깥에는 수맥을 뚫어 지하수를 팔 것이다. 지하수를 거슬러 물 터진 요정의 샘을 만나면 거기 어디쯤 당신의 깊은 속내를 만날 것이다.

부드러운 당신의 영혼은 사암을 안고 흘러 긴 냇물이 될 것이다. 냇물이 흐르며 머드가 쌓이고, 그 머드를 풀어 60년의 세파에 지친 몸을 던져둘 것이다. 머드에 고개를 묻고 숨을 멈춘다. 이대로 괜찮은가? 이 생은 의미가 있는가? 얼마나 남았는가? 전반기, 생은 안녕한가?

머드가 발바닥을 간지럽히고 숨통을 조여 오면 다시 요정의 샘으로 돌아가 몸을 맡긴다.

샘이 우리를 다시 받아 준다면 무이네 새듄사구로 달려와 제일 높은 모래무덤에 뼈와 살을 묻을 것이다.

모래무덤 언저리에는 '운명이 소개한 사람들'과 '린'과 '생의 모래먼지를 견뎌온 영혼들이' 호수를 수놓을 것이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살아온 날들만큼, 아니 그 절반의 세월, 15년만 생기 있기를... 눈부시기를... 기쁘게 웃어주기를... 부디, 운명의 절정기가 그 안에 남아있기를. 저기, 운명이 소개한 친구들 뒤로 요정을 닮은 가녀린 땅, 린이 멀어져 간다.

안녕 린, 그리고 요정의 샘물아. 우리의 15년을 지켜주렴.

축복해 주렴. [2025. 021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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