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의 온도 11. 송계 5리 승만 씨의 사과꽃

by 소요 김영돈

강원도 ~정선, 태백의 품에 안겨 흐르는 아우라지 젖줄.

마르지 않는 정선계곡을 휘돌아 나오는 물목마다 생명이 솟는다.


임계면 송계 5리 거기 사람 좋은 유승만 씨가 3만 평 자작나무 숲을 일구어 나무로 살아간다. 아우라지 산책로를 내어 사과나무를 심고 밭두럭 집 주변에 두릅 오가피를 심고, 산바람을 타고 다니며 사과꽃을 솎아내고 있다. 승만 씨의 웃음은 물목에 모여든 계곡물의 포말, 소리 없는 아우성. 20년 전, 승만 씨는 고향 정선 송계리를 떠나 상경했다. 여주에서 서희를 만나 죽어라 일했다. 속내를 염탐당하고, 장비를 내던지고 내뱉지 않은 말을 뒤통수에 쏟아붓는 노예생활이었다. 도심 주변에서 남들 밑에서 이리저리 떠돌다 온몸이 이리저리 쏠리며 비틀거렸다. 숨이 막혀 호흡이 임계리 즈음 도달했을 때 승만 씨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귀향을 결심했다.


5년 전 '승계 5리' 다리를 건널 때 고향 친구들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잘된 친구들은 충혈된 눈과 핏대선 흉쇄유돌근을 드러내며 플래카드로 흔들렸다. 찢어진 깃발 같은 후반기를 달리는 친구들도 귀향을 꺼렸다.

다리를 건너니, 텅 빈 산자락에 자작나무숲으로 바람만 쉬이쉬이 드나들었다. 산자락을 덮은 갈색 칡넝쿨을 걷어내고 포클레인으로 가시덤불을 뽑아내어 사과나무를 심었다. 승만 씨의 거북손에서는 연두색 잎이 돋아났다.


그해 가을, 자작나무가 서있던 산자락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을 때 승만 씨는 발목에 걸렸던 쇠고랑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날부터 승만 씨는 자작나무가 되었다.


4월, 아름다운 송계리에 사과꽃 만발하다. 승만 씨는 자작나무숲 너머까지 길을 닦다가 멈추었다. 정선의 아우라지, 물목의 속삭임 때문이다. 자작나무의 귀띔을 들었기 때문이다.


<<승만아! 길은 바람길 너는 자작나무라! 길 닦기 멈추고 님 맞으러 무릉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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