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달리 황토방, 아랫목이 설설 끓는다.
4-50년 전, 살던 고향마을의 집은 방마다 설설 끓었다. 수명 다한 참나무가 지천이어서 땔감도 풍성했다. '천연, 숙성, 발효, 친환경, 황토방' 같은 말은 집을 떠난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다. 가난하던 시절의 아랫목은 사람을 키웠다. 건강하게 살다 명이 다하면 조용히 떠났다. 자연식도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쇠죽, 여물, 군불, 고구마, 가래떡 얘기를 꺼내시며 밤늦도록 옛날이야기를 하시다 오랜만에 늦잠을 잔다. 40년 만에 늦잠에 빠진 어머니 얼굴 위로 햇살이 들어온다. 날이 밝도록 누워있어도 괜찮은 날이 얼마만인가. 창문 밖에 때늦은 싸락눈이 봄의 전령인양 흩어지며 내린다. 어머니 손을 잡고 뒷동산 명상길 따라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온종일 걸어도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만 가득한 명달리에 봄기운이 돈다. 황토방 연기가 산계곡, 개울물, 잣나무 사이를 조용히 날아오르고 새들의 발자국이 잔설 위에 선명하다. 잔설은 새와 고라니 토끼의 발자국을 꼭 끌어안고 단단히 버틴다. 하룻밤 몸을 지진들, 발효시킨 장을 취한들 집을 떠나 일생을 떠돌며 상한 몸이 되살아 날까. 탁한 피를 맑힐 수 있을까. 숙성은, 발효는 시간이 필요한 것, 건강도 오랜 쉼이 필요한 것을... 피가 문제인가. 상한 오장육부에 지친 영혼은 어쩔 건가.
명달리에는 아픈 사람들의 밥상이 준비된다. 지친 몸을 달래주는 자연밥상이다. 밥상 앞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창백하고 병색 짙은 사람들은 깡마른 광대뼈를 움직이며 천천히 오래 밥을 먹는다. 산나물을 오물거리며 하늘 가득 내리는 싸락눈을 본다. 깊게 파인 눈들은 침묵으로 말한다.
'봄이 오려나. 봄을 볼 수 있을까. 명달리의 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한이 없건만'
명달리에서는 오랫동안 집을 떠났던 사람들이 귀환한다.
이 창백한 잔설과 피가 말라가는 황톳빛 덧칠을 어쩔 건가. 이튿날, 어머니는 고향에 온 듯 일찌감치 누워 꼼짝 않는다. 삭신이 쑤신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아랫목에 팔다리를 넣으니 설설 끓는 아랫목을 떠나기 싫어지신 게다. 어머니는 여기서 멈추고 싶어진다. 봄이 귀찮고 성가셔진다.
봄도 싫고 추위도 싫고 쑤시는 삭신은 더욱 싫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
명달리에는 먼 길을 떠나온 사람들이 둥지를 틀어 살고 있다. 하지만 둥지는 사방이 텅텅 비어있고 텅 빈 둥지를 둘러싼 나무에는 푸른빛이 돈다. 집주인을 아랑곳 않는 나무, 개울, 야산, 황토 그리고 참나무와 잣나무 자작나무가 수액을 깊이 빨아들인다. 명달리 정류장에는 봇짐을 든 사람들이 몇몇 서있다. 사람들 귀등으로 콧등으로 칼바람이 분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재촉하는 마지막 호령이다. 바람은 잣나무 숲으로 새를 몰고 가며 말한다.
'잘 생각해 봐. 떠나는 게 최선인지'
'준비는 되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준비 말이야'
40년 전의 그 말은 잔설에 파묻혀 있는 한겨울 들깨 대궁처럼, 회색 두릅나무처럼 무심하다. 저 장작 같은 나무에 연두색 잎이 나고 갈색 가시가 돋기 전에 막차가 도착할 것이다. 40년을 떠돌다 다시 명달리로 돌아온 막차. 야트막한 산과 계곡물에 둘러싸인 명달리에는 붉은 황토 집들이 즐비하다.
나는 잣나무 숲의 길손에게 물었다.
"이 마을에 특별한 흙이 있나요?"
"아뇨, 누군가 아파서 아랫목에 눕고 싶은데 누워도 오한이 오더래요. 그래서 빈 구들장에 군불을 때서 재웠대요. 그렇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원기가 돌았대요. 그렇게 집 집마다 아픈 사람이 일어섰대요. 나도 아파서 왔다가 눌러앉았고요."
명달리 아랫목에서 몸을 푼 어머니의 몸에서 푸른 싹이 돋는다. 우리는 믿음의 방에서 지졌고 매화, 소망, 국화방은 비어 있었다. 아픈 사람은 모두 명달리에서 몸을 푼다. 정류장에 머물던 겨울이 진눈깨비를 뿌리며 마지막 손사래를 친다.
하얗게 뽀얗게...... 소리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