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沼湖) 위, 수초를 물들이며 해 넘어간다.
갈색으로 멋을 내기 시작한 멕타스퀘이어는 일찍 채비를 끝냈다. 단 한치도 어긋남 없이 흐르는 시간은, 수초아래 수많은 움직임의 숨통을 끊어 매듭짓고 이으며 말없이 흐른다. 질경이 칡넝쿨 코스모스 굴참나무를 헤치고 파라솔을 지나면 창틀 안에는 여름 한때 모기가 그랬듯 피고픈 사람들이 호수에 눈을 두고 웅성거린다.
피 한 모금에 목숨을 걸고 살았던 여름은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이곳 '하오개로'의 이름 모를 호수에 누워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이곳까지 도망쳤지만 언감생심, 모기떼보다 더한 사람들의 시선이 여름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다. 수초잎은 민망한지 얼굴을 적갈색으로 물들이며 여름을 감싼다. 누가 뭐래도 가을 햇살. 시간조차도 이 긴 햇살의 색채와 뉘앙스를 바꿀 수 없다.
가을이 무리 지어 온다.
수초를 헤치고 후드득 해가 진다. 모든 것이 어긋났던 여름, 기대에 찼던 사람들은 작별인사 없이 사라졌다. 해거름의 적막을 깨고 풀벌레가 울기 시작한다. 울음소리는 청계산 능선을 넘어 잘못 든 숲 속의 카페 백열등 아래로 떨어진다. 가을이 웅웅 울며 공원묘지에 잠든 주검들을 깨운다. 곤충의 시신과 물든 잎새가 함께 뒹군다.
가을 겨울 봄 여름,
다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