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의 온도 24. 사슴벌레

by 소요 김영돈

인생은, 행진곡 같은 것. 운명은 식탁 위에 올려놓은 것들을 모아 사람들이 이름 지은 거지요. 사람마다 그들의 생각으로 차려놓은 그들의 밥상 같은 것. 나대로 차려놓은 정갈한 한 끼는 사슴벌레의 시간.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새벽에 하루의 문을 연다. 수목장림 아래에서 밤새 움츠린 팔다리를 움직인다. 후드득 빗소리에 맞추어 팔다리가 요동친다.

한 끼의 밥으로 만들어진 피가 삶을 지탱하고, 힘에 부친 인간들은 유압이 밀어내는 중장비로 부족한 힘을 대신한다. 유압의 힘은 도도해도 피만은 못하다.

'편히 쉬세요.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천국에서 만나요.'

인간이 인간을, 인간이 나무를, 나무가 인간을 끌어안으며 작별인사를 한다.


사슴벌레의 시간, 나는 '소설, 황금연못과 천년의 사랑과 서울 1964년 겨울'을 들여다보며 저쪽 세상을 엿본다.

저쪽 세상에도 관대함이 흐를까. 사라진 기억의 조각들은 어디로 갔을까. 시신을 품은 나무는 피가 말라붙은 육신을 흙이나 나무조각, 풍뎅이, 사슴벌레의 등딱지와 구분할 수 있을까. 모든 주검에 이름이 있었음을...... 생애가 있었음을. 아득히 수국의 정원이 보이고 천년의 세월 가슴에 자리한 불두화 화단은 비 오는 날에도 눈이 부시다. 저쪽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은 나무로 이편을 본다. 나무의 침묵과 의연함과 인내와 우직함을 어찌 닮을까. 참나무 둥치, 도끼로 찍힌 곳에 사슴벌레가 산다. 그 상처를 감싸고 진액을 핥으며 산다. 사슴벌레는 나무의 전령, 나는 저편이 궁금할 때마다 사슴벌레가 되어 나무에게 묻는다. 저편은 어떤지, 떠난 사람 중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소식을 묻고 그 대답을 기다리며 쓴다. 매일, 조금씩, 사슴벌레의 식성으로.


사슴벌레는 하나의 답이 올 때까지 날아오르지 않는다. 움직임도 없이 진액을 삼키는 소리도 없이 가만가만 귀 기울이고 멈춰서 있다.


전언이 들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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