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가 필요했어요. 이 가난과 변변찮은 두뇌, 낯가림과 특이한 취향으로 우연이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기에 버거워, 도구가 필요했어요. 대놓고 깔보거나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을 거 같아서요. '평범하게 나답게' 살고 싶었던 거지요. 그래서 그런가요. 저따위, 하며 함부로 덤비거나 할퀴는 자들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친구들은 모두 달아났어요. 평범하게 산다는 건, 홀로 고독한 인생을 쉬지 않고 헤쳐가는 거예요. 다행히 사람을 함부로 하거나 남의 인생을 훈계하려는 자들은 얼씬거리지 않게 되었지요.
도구는 많은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주어요. 지독한 약시가 맞춤형 안경을 낀 것처럼요.
'심장을 내놓으면 월계관을 주겠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엎드려라'하고 접근하는 자들의 흉계 따위는 한눈에 알아차리게 되었어요. 그들은 햇살에 노출된 돈벌레처럼 달아났지요. 도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은, 흑수저로 살아가면서 받아야 할 채무를 한꺼번에 갚아내는 시간이었어요. 박사학위 최종심에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심사평으로 재심판정을 받아 지독한 한 학기를 더 보내야 했어요.
그날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지요.
'네가~ 어딜 감히'의 메시지를.
10년의 여정에 '포기'를 신중히 고려할 만큼 마음이 소용돌이쳤어요. 저자가 될 때는 200여 곳이 넘는 출판사의 거절 메시지를 받았어요. '옥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어딜 감히 돈도 없이 작가가 되려고~'하는 거절의 속내가 숨어 있었지요. 침구사, 동기면담훈련가,... 어느 것 하나 녹녹한 구간이 없었어요.
'무엇?' 아니 '어떻게' 였어요.
도구를 만들어가는 구간 동안 '상처'들이 아물어 갔어요. 도구들이 모여서 이런 생각들을 가슴으로 내려 보여주었어요.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어느 구간에서든 옳다'
'분노할 때 제대로 분노하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닥쳐올 비극에 잘 대처할 수 없다'
'오스트리아와 알프스 사이에 <세머링>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에 비엔나와 베니스를 잇는 철도를 만들었다.(그 험난한 협곡에) 달릴 기차도 없는데 철도를 만든 이유는, 언젠가는 기차가 올 줄을 알았기에.'
'여행'이었던 거예요. 미룰 수 없는 '여행'.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고 누구의 훈계도 소용없는 여행인 거지요.
때 이른 장마가 시작되려나 봐요. 계약서가 있는 것도 아닌데 '60초 소설'을 구입해 준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의 소설을 잔뜩 실어서 책을 묶어서 기꺼이 도구가 되어준 사람에게 보냈어요. 삶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15년을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 일하신 칠순의 엔지니어가 말해 줬어요. 최소한 10년을 몸을 도구로 써나가면 비로소 몸이 느껴요. 그 현장에 맞게 저절로 변신하는 거지요. 인생은 살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그건 몸이 느껴야 하는 거래요.
몸이 도구가 되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과 두발이 자동화된대요.
그런, 글을 써보려고요.
올해 장맛비를 마중하러 가요. 온몸으로 처벅처벅 걸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