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위대한 장의사를 위한 헌사>
삭발하고 중이 되려다 장의사가 되었다. 실력만 있으면 잘할 수 있대서. 영가, 4천 명. 물론 27세 아파트 방화문 공사하다가 폭망 했던 적도 있었다.
4살 난 딸 앞에서 직업을 말할 수 없었다. 아내는 알고 있었지만 부모한테는 10년간 행사기획사 경영한다고 선의? 아니, 선택의 여지없는 거짓말을 했다.
잘 살아야 한다. 영가가 있다. 내가 보았다. 어느 날 큰스님 보내고 평온을 기원하고 당부하고 부탁하고 애원하고....... 돌아와, 광주 숙소에서 잠을 청하는데 어떤 영가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불렀다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해서 한숨도 못 자고 있는데,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다.
"염장이는 염을 해라. 그의 후반기는 그의 몫이니."
그날부터 더 이상 영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을, 나는 기운이라 부른다. 영가의 기, 환생의 기, 죽음 이후의 기운.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수용과 거부"
법정스님은 40부터 죽음을 수용했다. 언제 가든 지금 내가 입은 채로 보내줘라. 승복 그대로, 관 따위도 준비 마라. 관 없이 경사 15도 그 거리를 어찌가.
하여, 당신의 평상 승복을 입히고 대나무 침상에 당신을 눕히고 갔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법정스님 다웠네, 무언의 법문이었네"하고 말했다.
나는 그 법정스님을 보내며 '나'란 인간을 보았다.
글도 스님처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송해 선생님도 편안했다. 벌써 2년이 흘렀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다니. 송해선생님도 수용 쪽이다.
주검의 얼굴이 잠자듯 평온하셨다.
평생 목발이었던 아버지를 보내는 딸이 울면서 말했다.
"다리 좀 만들어주세요. 저쪽에서는 마음껏 걸을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주검에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딸은 한없이 고마워했다.
친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명을 보냈다.
정성을 다해 보내 주었더니
'친구 엄마'가 나를 꼭 안아 주시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 고맙다"
그날부터 친구는 절대 못 보낸다
함께 놀던 추억이 돋아나 감당할 수 없었다. 감당이 안돼서 이제 친구는 안 하려고.
고인이 순수하게 주인공이 되는 30분. 우리에겐, 작지만 위대한 진리가 있으니,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지금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스티브잡스는 17세부터 이 질문을 했다. '소설, 시, 에세이, 희곡, 시나리오' 모두를 아우르는 엔딩 노트.
내 일기장의 막지막 장은, '엔딩노트'다.
삶은, 죽음을 향한 항해. 마지막 날 남아있을 한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지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때, 필요한 유일한 위로는 침묵. 눈빛 하나 남을 듯. 세상이 있고 환생도 있는데 어느 날 형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고 추억만 30년 맴도는... ..., 그리운 형.
늘 나를 응원할 형.
그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침묵과 눈빛뿐인걸.
가끔 미치게 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 그런 사람이 있지.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야 와 주는 그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