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가려운 곳은 보이지 않는데 전신이 굼실거린다. 축배를 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진가 저수지는 생동감이 넘친다. 높은 하늘이 깊이 담겨있고 수초 사이를 수없이 넘나드는 참붕어 치어들, 소금쟁이들, 아무도 손대지 않아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붓꽃 대. 저수지 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고요하다. 복사나무가 독이 잔뜩 오른 뱀처럼 꽃대를 몽실 대고 있다. 과수원 옆의 저수지가 품은 끝 모를 깊이의 바닥이 복사꽃의 잔치를 암시한다. 어디 깊은 바닥이 잔치만을 암시할까. 때로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게 세상이어서.
언 들판 논두렁 길에 가랑비, 내린다.
덧난 마음에 연고 같은 비다. 40여 년 전 권총을 차고 따듯한 남쪽 나라를 향해 달려왔던 탈북자 j는 흉추 4번이 터졌다. 옴짝달싹 못 하며 1주일째 누워있다. 분노와 슬픔, 회한이 한꺼번에 몰려와 홧김에 무거운걸 집어 날랐기 때문이다. ‘내가 이 꼴을 보려고 이곳에 왔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내가 처자를 버리고 이곳에.’ 맹수 같은 눈에 총기가 하늘을 찌르던 j는 지금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있다. 남녘은 지금 계엄령이 내려졌다. 전력을 다해 40년을 도망쳐 온 '따뜻한 남쪽 나라'에 무서리가 내린 것이다.
창문 밖 화단에 목련이 눈을 뜬다. 스산한 마음에 연고 같은 눈을 바라본다. 그래 연고. 안티푸라민 같은 연고였다. 40여 년 전 이즈음, 어머니 눈에 연고를 짜 넣은 적이 있다. 눈에 티가 들어갔다고 녹슨 나사처럼 눈깔이 뻑뻑하다고 밭에 두엄을 뿌리던 어머니가 눈을 부여잡고 마당으로 달려 들어왔다. 핏줄 터진 어머니 눈을 보고 어린 마음에 무조건 약통을 뒤져 연고를 짜 넣었다. 갑자기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담을 넘었다. 따갑고 쓰라린 눈을 씻어내야 하는데 빌어먹을 물이 안 보인다. 수도로 달려가 마중물을 한 바가지 넣고 미친 듯 펌프질을 했다.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눈을 행주로 씻어내고 있었다.
‘마중물이 펌프질과 만나 수맥을 끌어올리는 시간’ 내 생에 가장 갈급하고 긴 시간이었다. 마중물 한 바가지가 내려가기 전에 펌프질, 다시 마중물 펌프질, 급한 마음에 바가지는 깨지고 물이 바닥날 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중물에 눈을 씻던 어머니의 실핏줄이 터졌다. 마중물에 피가 떨어졌었다. 다시 마중물에 펌프질, 펌프질에 마중물. 어머니의 꾀죄죄한 겉저고리가 흠뻑 젖었다. 어머니의 주름진 목을 타고 움푹 팬 빗장뼈 아래로 쭈글쭈글한 가슴 둔덕이 보인다. 마중물에 젖어 속옷이 착 달라붙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엄마 미안해”
“내가 워낙 다그쳤잖니. 빌어먹을 오지게도 아리네. 그러니 연고가 효험이 있나. 너는 앞으로 살면서 눈에 연고 짜는 일은 없겠다.” 3월 그날도 이렇게 봄비가 내렸다. 근 40여 년 전의 봄비가 연고를 생각나게 했다. 그날도 가랑비였다. 어머니는 눈을 추스르고 다시 두엄을 뿌리며 말했다. “요렇게 가랑가랑 와주면 흙이 두엄을 만나기 참 좋지. 날은 참 좋다. 올해는 완두콩을 두어 두럭 늘려보련다”
2024년 12월 3일에 또 실핏줄이 터졌다. 42년 만에 터진 실핏줄. 내 눈에 온 거다. 눈에도 마음에도 모두 터졌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115일째 3월 27일 꼭 이맘때다. 저 야산과 봄 들판 수목 아래 산새와 벌레 나비 진딧물, 그 아래 고라니 멧돼지 뱀, 그 아래 애완견, 그 아래 서열에 해당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인간에게 기만을 당한 지 115일째 되는 날이다. 그간 일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폭설, 폭설이 내려 교정에 더벅머리 소나무와 주렁주렁 가지를 벌리고 섰던 나무들은 부러지거나 허리가 두 동강 났다. 특히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등 산새와 까치 벌레들에게 열매를 모두 내준 유실수가 많이 쓰러졌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던 유실수들은 열매도 죽음도 자연에 던져두고 자연의 품속에 안겼다.
두 번째는 노벨상, 한강의 야윈 어깨와 그림자가 도드라진 눈 밑 지방과 수척해진 얼굴을 덮으려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섞인 새치. 오래간만에 문학의 둔덕에서 마중물을 만났는데. 기쁘고 부듯했는데. 내 생에 ‘작은 위로’ 같은 걸 받았는데. 몸으로 때우며 부지깽이로 쓰는 장복순, 생업의 정글에서 글줄을 놓지 않는 어성호 같은 사람과 밤늦도록 ‘소설’을 이야기한 ‘우리들의 블루스’는 인생 선물이었다.
야위고 수척한 한강을 더욱 수척하게 만들고 그 흔한 축하의 말, 안동소주 한 잔 건네지 못하는 나라. 탈옥수는 국위라도 선양한 듯 주먹을 불끈 쥐고 탈옥을 시도하고, 카퍼레드라도 펼치려는 기세다. 남쪽에서는 사상 최대의 산불이 번지고, 온몸이 타들어 가도 새끼 젖을 물리던 진돗개가 수술에 들어가고, 구조 헬기가 추락하여 마음을 헤집고, 탈옥수로 말미암아 1천 년을 쌓아온 신뢰가 무너져가는 ‘조선의 오늘’은 환란이다. 환란의 조국에도 봄이 오는가?
팔이 끊어질 듯 펌프질을 해도 허리가 뻐근하도록 마중물을 부어도 물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처가 덧난 몸과 마음에 가랑비가 내린다. 연고 같은 비가 내린다. 연고를 듬뿍 뿌려준들 떠나간 어머니가 돌아올 리는 없지만, 오늘은 어머니보다 스승이 그립다.
‘나는 누구인가’를 말씀하시던 스승은 포행을 떠난 지 2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자목련 잎을 맨발로 지르밟고 깨진 토기 조각을 밟으며 ‘토기가 흙으로 돌아갔으니 참 좋다’ 하시며 떠나신 스승이, 오두막이 그립다.
<어험, 한 걸음 더 버텨라. 다 아프니 한 걸음 더 버틴 곳에 네 허물이 보일 지니>
스승님, 파종기입니다. 그간 기체후 일향 만강하시옵고…. 그리움이 왈칵 밀려온다.
<소식을 묻는 너는 누구인지 살펴라> 스승의 전언이 저수지를 휘돌아 바닥을 헤집고 메주콩밭 두엄 위를 지나 허공으로 솟아오른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