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간이 안 된다, 는 말을 했던가요? 당신이 필요로 할 때.
저한테 혹여 그런 말을 들었던 분들께는 미안합니다. 실은 마음이 없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올해는 꽃이 오는 걸 지켜봤어요. 언제 오나, 남쪽 하늘 저편과 주변의 나무들 꽃이 멍울져 오는 모양을 매일 지켜보았어요. 꽃이 웃고 떠나는 뒷모습까지 고스란히 지켜봤어요. 그냥 당신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었어요. 초저녁잠이 많아 저물녘에는 비몽사몽 보았고 어둑새벽은 제법 자세히, 심지어는 꽃의 눈동자까지 마주쳤어요.
웃더군요. 나보고 웃어보라고도 하고 웃을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어요. 꽃이 한 말이 맞았어요. 초록이 몰려들기 전에 꽃과 눈을 마주할 시간은 2~3일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그 짧은 시간에 꽃이 전해준 말을 들었어요. 조용히 웃고 서둘지 말라는 메시지. 금세 초록이 오고 철쭉 싸리꽃이 꽃, 말을 지워나가요. 억세고 눈부신 철쭉과 싸리꽃은 집요하고 느슨해요. 그래서 그 꽃들이 하는 말은 믿지 않아요.
모름지기 꽃은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죠. '벚꽃'인가요? 아마 ‘벗’ 일 거예요. 나에게 귀띔한 꽃들은 모두 친구들일 테니. ‘다음에 봐요’ 하는 말도 여기서 멈춰야겠네요.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고 당신이 수용하셨다면 그 앞에 이런 생각들이 들어가겠네요.
'저쪽 세상에서, 천국에서, 마음 편하게, 아무 걱정 없이, 아프지 않은 상태로, 시름없는 곳에서….' 지옥은 빼보려고요. 내가 사랑했던 당신은 좋은 곳이면 좋겠다고 기도했으니까요.
꽃과 마주친 2~3일 동안 웃지 말고 글을 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3월 말에서 4월 초순 사이인데 그때 그 웃음 속을 파고들어 가 어딘가 저쪽 세상을 둘러보고 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소설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그 언저리일 거라는 영감이, 엔딩노트 앞에서 떠오르네요. 시간이 다 되었는데 이 얘기를 할까 말까 오래 망설였어요. 엔딩노트를 두고 떠나면 이곳을 볼 수 없겠죠. 내가 무엇을 하던 사람이고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저쪽에서는 알 수 없겠죠? 이즈음 태어났으나 이즈음 떠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꽃이 활짝 웃어주고 말 걸어주는 때. 그동안의 작별 인사는 만남의 연장이었지만 이제는 종착역에 도착했어요. 아직 버릴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니 저 산등성이 노송이 송화를 만들고 있네요. 독야청청 서서 바람만 기다리며 바람이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노송이 단단하게 버티고 서있네요.
저런 나무가 저쪽 세상에도 있을까요?
이 엔딩노트를 닫고 허공으로 던지면 새가 되어 솔밭으로 날아갈 거예요.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작별을 고합니다. 험담하지 마세요. 그리워하거나 애달파하는 것은 더더욱 하지 마세요. 인류 전생에 최초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될 테니까요.
모두 안녕,
죽어가는 모든 것들아. 좀 웃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