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징거미가 익어가는 시간

6초 소설 16

by 소요 김영돈

J 씨는, 눈이 퉁퉁 부었다. 운 것이 아니라 참아내는 시간이 켜켜이 쌓였기 때문이다. 어린 J 씨는 칡넝쿨 우거진 산골, 뜨겁게 달구어진 바윗돌 위에 징거미를 올려놓고 개울 속에 잠수했다.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을지 해와 대결할 참이었다.

어머니의 눈물, 형의 환영, 동생의 가난, 허기…. 도랑물을 아무리 들이켜도 가시지 않던 허기. 징거미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양식장을 탈출하고 나면 가을을 버티지 못할 터인데 이 한여름에 어쩌자고 이곳 우거진 산골짝 웅덩이에 왔는가?

징거미를 보며 j도 이 땅에 오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징거미는 바위 위에 누워 해를 마주하고 있었다. 가을을 꿈꾸지 않는 갑각류답게 수염을 늘어뜨리고 거추장스러운 집게도 접고 바위에 벌렁 드러누워 있다. 등짝이 벌겋게 변하면 속살은 연하고 부드럽게 익는다. 오그라든 그 살점을 가려운 등짝을 긁던 손으로 집으면 손톱에 박혀있던 소금기가 침샘을 자극했다. ‘정의’, ‘의리’를 꿈꿀 수 없었다. 힘없는 정의는 폭력을 불렀고 설익은 의리는 후회를 남기는 것들이어서.

55년의 생애 동안 9명의 자식을 낳고 키우고 잃고 먹이고, 먹이고 먹여도 사라지지 않는 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위장에 암이 자랐다. 아버지를 보내고 나서 아버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말들이 쌓였다. ‘패륜, 범죄자, 좌익’. 그리운 아버지의 위장을 놀라게 할 일들은 계속 일어났다. 어머니 앞에 악다구니하는 형제 앞에서는 인생의 배수진을 칠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더는 용서할 수 없는 지점, 그 꼭대기에는 찬 바람이 불고 장대는 흔들리고 날개는 찢어지고 칼부림이 날아왔다.

‘내가 대체 누구의 철천지 원수인가?’

화장실 청소일을 하던 동생을 잃고 나서는 이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어머니, 당신이 자식 앞에서 견뎌야 했을 시간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 땅에 오지 않았으면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주신 가족이라는 굴레가 짐이 될 때가 있었다. 삶의 굽이를 넘어설 때마다 버티고 있던 ‘허기와 가난, 굴욕과 수모’. 끝없이 이어지는 ‘있는 자’들의 횡포.

어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빌었다.

‘주여, 이 어리석은 영혼을 용서하소서. 이 나라 백성을 굽어살피소서. 저를 당신의 탄환으로 붓으로 아니 한 줌의 거름으로써 주소서’

J는 고개를 들었으나 숨이 차지 않았다. 숨은 삼키고 호흡은 뱉고, 삶은 물속을 흐르고 죽음은 갈고리처럼 선명한 것이어서. 징거미에게 가을은 마주할 수 없는 계절이어서. 고향마을 개울 속에 내려놓은 것은 참았던 ‘거친 숨과 분노, 어리석은 생’이었다. 이제는 호흡이 튼다. 수면안에서는 밖에서만큼 호흡이 편하다. 버릴 것을 모두 버렸기 때문이다.

징거미가 빨갛게 익은 바위 위에 봄볕이 내리쪼이고 J 씨는 살찌고 잘 익은 징거미 세 마리를 남겨 주머니에 넣는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일진대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사랑이요. 행함이 있는 ‘소망’이 사랑이라.

[20241203∼2025.0401.

주님이 지켜볼 징거미의 나라, J 씨의 부은 눈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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