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소설 15
아내는 붕붕 소리를 내며 날아다녀 날파리처럼 보이지만, 어렴풋 자신이 여왕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무딘 혀를 말아 침처럼 뾰족하게 만들어 벌처럼 쏜다. 요즘은 그 횟수가 늘었다. 그 침은, 사내의 무딘 괭이와 쇠스랑으로 개척한 황무지에 곡식을 자라게 했다. 수십 년간 엉겅퀴가 자라던 밭에 감자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날파리의 날갯짓은 꿀벌의 날갯짓으로 바뀌어 갔다. 아내의 날갯짓에서 쇳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감자를 심던 척박한 밭을 아내와 그의 모친이 팔아 치우고 난 후의 일이다. 감자를 판 엽전으로 인하여 배가 불러지고 고구마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일꾼이 필요했고 사내는 종자가 필요했다. 아내는 내게 쇠스랑 대신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지휘봉을 쥐어주며 말했다. "조상님 말씀 들어요. 지금부터 당신은 농부가 아니에요. 전사이자 왕이에요" 아내의 입김에 힘입어 동네사람들은 사내에게 왕관을 씌워주었다. 40 동안 단 한 번도 헤아려보지 못한 '타인의 속내를 보는 눈'은 이제 사내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거칠 것이 없었다. 아내가 등을 떠다밀며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했다.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던 어느 날 아내는 화가 나서 말했다. ‘총을 들어 적을 섬멸하세요. 수하들에게 진군을 명하세요. 저 지평선이 모두 우리 땅이에요. 영생을 노리는 우리가 이 좁은 땅에서 어떻게 살아요. 진군을 거듭하여 모두 당신의 땅으로 만드세요.'
한참을 질주하고 있는데 주변이 조용했다. 사내가 깨어보니 여기는 황무지, 사내는 농부, 그의 손에는 농사에 맞지 않는 총칼과 휘장이 가득 장식된 지휘봉이 들려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쇠스랑을 들고 밭 주위에 빙 둘러서서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돌아보니 사내를 따라오던 무리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40이 되기 전에 알아채지 못한 것들 중 지금, 사내의 전신을 흔드는 것은, 타인에 대한 헤아림이다. 그것은 뿌리부터 열매까지 봄부터 겨울까지, 탄생에서 죽음까지 모두를 흔드는 영혼의 행방이었다. 그것은 유령이 되어 지친 영혼을 좀먹어 갔다.
아내의 호통소리가 들려온다. 현실인가 환청인가 구분할 수 없다. 아내는 손톱이 긴 마귀할멈으로 변하며 말했다. ‘빌어먹을 다 뭉개버릴 거야. 끝까지 싸울 거야.’
사내는 있는 힘을 다해 외친다. ‘여보, 길을 잘못 들었어요.'
그러나 아내는 지금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알 수 없는 세상 속으로 멀리 떠난 뒤였다.
<'~ 2024.12.03. ~2025.3.27' 무명 씨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