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소설 27
나는 간다, 저 광활한 세상 속으로
슬픈 생각과 다행이라는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지독한 독가스와 분진(이는 화산재보다심했다) 가득한 사무실에서 수영호흡하듯 4개월을 버텼다.
'아니, 네가 아니고 네 주변 사람들이 버텼겠지' 이 말이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잘린 뱀꼬리처럼 파닥거렸다.
슬픈 생각은 이제 세상에서 나를 받아 줄 마지막 근무처가 사라진다는 것이고, 다행스러운 것은 내 심연 깊은 곳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수많은 자아들이(일명 의무새, 앵그리버드, 악당, 트라우마) 더 이상 사람들 앞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간 나는 진급을 했다. 시간에 떠밀려 얻어낸 성취이지만 가족을 포함해 잠시 내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나는 땅콩이든 떡을 주문하여 '꼭꼭 씹어드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써서 돌렸다. 진급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처리할 공문서에는 선진국답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인져나와 나를 괴롭혔다. 정작 가장 위험한 건 '나'라는 생각이 고장 난 형광등 불빛처럼 깜박였다. 파닥이는 뱀꼬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들끓는 자아들은 근무 중 무작위로 들이닥쳤다. 그때마다 나는 울거나, 나의 머리를 패주거나 소리를 질렀다. 홍대에서 젊은 애들이 풍기던 대마 냄새, 누군가 스치듯 했던 말 '너는 지은 죄가 있어 시골서 오래 썩을 거야', 독방에서 답을 찾아 밤새 헤매던 수많은 집착의 시간들, 그간에 내가 놓친 것들은 무엇일까? 수년이 지난 지금 이런 것들이 수시로 나를 따라와 나를 장악한다. 나만큼 공부를 잘했을 의사는 말했다.
'날파리처럼 얽혀있어. 증상은 사람마다 달라. 방법은 나도 잘 모르겠다. 약을 줄 테니 날파리가 출몰하면 먹고 자. 일단 지켜보자.'
나는 완벽주의자다. 답을 찾아 10여 년을 보내고 답을 잘 맞혀 남들이 말하는 명문대 하물며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졸업 후 종착역에서는 답이 없었다. 세상은 나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니, 네가 준비되지 않은 거야'
지나 보니 답을 찾는 과정에 모든 답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쉽게 적응하는 일, '질문하고 이해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바꾸어가고 다른 모습으로 대처하고, 다시 반복하고'하는 일이 나는 왜 가장 어려울까. 내 어깨는 큰 바위덩이 두 개가 얹어진 것처럼 딱딱하다. 거울을 보면 바위는 보이지 않는데 어깨가 기울 만큼 힘이 들어가 있다. 천근짜리 쌀가마를 올려놓은 것처럼 근육이 뭉쳐있다. 이는 잠을 잘 때도 내려지지 않는다. 나는 약 없이는 단 하루도 잠들 수 없다.
직장 상사와 내 안에 서식하는 새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어지간히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새들(의무새, 앵그리버드, 악당)과 대화하며 나로부터 꺼질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도 강해서 나에게는 새를 조율한 집중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나는 간다. 저 광활한 의식의 세상 속으로. 이는 분명하다. 내가 떠나는 것이다. 새들이 그득한 또 하나의 세상 속으로. 그 새 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러 떠난다.
"나는 여기까지야. 네가 단단해지지 않으면 걔들이 너를 먹을 거야. 다들 새떼를 키우지만 새들에게 먹이를 주지 그들의 먹이가 되지는 않아" 어지간히 선량한 상사는 나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렇게 말했다.
[7.11~부터 우주로 떠나게 될 00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