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소설 28
행복, 은행나무, 코스모스, 조은, 눈꽃 등은 화원 앞에 붙는 수식어다
어머니, 형님, 금강산, 친구에 붙는 수식어는 언제나 '그리운'이다.
미경 씨가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만 이천봉, 말은 없어도'
피클볼장을 무장해제시킨 노래.
우리는 모두 스트록을 멈추고 두 팔을 내리고 넋을 놓고 노래를 들었다.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아 아리~'. 소리통은 크고 웅장했다. 이 노래가 사라진 건 아닌지 의심했었다. 이제는 그리움은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세상인가.
명분과 이익을 위해서 몇십 몇백 명은 죽어도 괜찮은 이 땅에서 그리움 따위가 설 땅은 없어졌나.
나는 라켓을 놓고 그 자리에 한참을 주저앉았다. 왜 이 노래가 이토록 오랜만인지, 왜 그리움이 밀려오는지, 왜 인생의 게임은 이토록 작은 일들에 무장해제 되는지, 왜 그리움은 멈추지를 않는지. 그러고 보니 그리움 때문에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미경 씨가 다시 일깨워 준 셈이다.
그리움의 수맥이 터졌다. 무장해제 후에도 오래도록 노래의 여운이 남는다. 노래가 끝나고 경기는 계속되었다. 탁구, 테니스, 배드민턴을 한데 모은 피클볼 장에 미경 씨의 '그리운 금강산이 울려 퍼진다.
노래의 여운 때문인지 J는 라켓에 이마를 맞아 찰과상을 입었고 나는 코트에 나뒹굴고, 게임은 졌다. 땀에 젖은 채 누워서 천장을 보니 '오늘에야 찾을 날 와았나~'하는 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그리움은 때로 현실을 멸시한다.
금강산행에서 보았던 하얀 바위계곡, 안내원 강철 씨, 온정리사람들이 타고 가던 구르마 바퀴, 경계병의 눈동자, 개성공단 그리고 그리운 금강산, 몇 날 며칠 폭염 장맛비 예보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다. 올 거면 비야, 장마야, 그리움아 남은 생마저 저 장마진 강 하구로 나를 데려가 다오. 거기, 소용없어진, 한때 더할 나위 없었던 그리움의 진탕 속으로.
금강산은,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