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나가노현 아즈미노, 볼케이노 겐지

60초 소설 37

by 소요 김영돈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

'무한히 너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당신이 언젠가 수평선 저 너머에서 홀연히 나타나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다. 그리고 나 따위와는 정반대의 자세로, 나의 전언을 비웃으며,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을 들고 나타날 당신을 고대하고 있겠다'


1943년, 82세의 당신. 부릅뜬 눈과 화석이 되어버린 집게발 꼿꼿한 등과 탄탄한 꼬리 다리하나 부러진 곳이 없는 완전한 박재.

화이트클라키(이하 화이트)가 탈출한 지, 보름 만에 발견되었다. 딸아이가 떠난 텅 빈 방 침대아래. 때늦은 코로나에 걸린 남편이 임신한 아내를 처가로 피신시켜 딸에게 발견된 화이트.


보름 전 화이트가 집(어항)을 탈출했을 때 순간 아찔했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냉장고 장롱아래, 소파를 드러내고 침대밑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한밤중 불을 끄고 어항 근처 길목마다 물수건을 배치하고 중간중간에 물바가지도 놓아두었다. 갈증이 나면 물 쪽으로 움직이고 물길을 감지하는 촉이 있으니. 사흘 째 되는 늦은 밤, 플래시를 비추며 생각했다.

숨은 거야? 아님, 갈증을 참는 거야. 설마 결기나 자존심? 화이트의 박재를 볼케이노 앞에 세워두었다. 견고한 두 개의 집게발, 딱 버틴 등짝, 의연한 꼬리 어느 곳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저대로 갈증을 견디고 그대로 서서 눈을 부릅뜨고 죽었다


탈출 보름동안, 볼케이노는 알을 잔뜩 품었다가 모두 떨궈내고 하나하나 먹어치웠다. 집게발 두 개와 뒷다리 4개를 물어뜯었던 화이트의 성미. 함께한 3개월 동안 둘은 매일 노려보고, 매일 싸웠으며 늘 숨고 물어뜯고 한번 부둥켜안았다

가재의 사망률 중 탈출이 10% 정도라는데 24시간을 버티기 어렵다는데 화이트는 불현듯 탈출하여 보름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볼케이노는 화석이 된 화이트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공격할 것으로 보인 것일까. 서로를 태연하게 먹는 갑각의 세계에서 죽음은, 차라리 조소활동에 가까운 것일까. 볼케이노는 남아있는 뒷다리 세 개를 곧추세우고 수염도 길게 바짝 앞으로 내밀어 화이트를 오래오래 노려본다. 그들 사이에는 아직 성능 좋은 산소공급기 소리가 요란하다. 그들의 추억만큼이나 요란한 물방울이 어항을 가득 메운다. 볼케이노는 몇 안 되는 발을 튕겨 물방울 폭풍에 몸을 던진다. 먹이 한 줌을 듬뿍 넣어주며 말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도망칠 다리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어>>


그러니 인생도 소설도 끝까지 살아보거나, 써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어. 그러니 어쩌겠어 끝까지 살아보거나 끝까지 써보지 않고는 인생에 매너리즘이나 한계 따위는 없는 거지. 빛이 있는 쪽으로 물이 있는 쪽으로 끝까지 가보는 거야.


82세, 적어도 당신이라면, 이 정도 나이에서도 거뜬히 100년을 기대해 볼 겁니다.


안부를 묻습니다. 장미 정원, 개, 노을, 건강한 아내, 바이크, 민 머리, 노려보는 눈빛, 달, 해, 칼, 슬픔과 기쁨, 분노...... 고독 모두 안녕하신지요. 그 땅에 어쩌다 가면 꼭 당신 있는 나가노현 쪽을 흘끔거리게 됩니다. 붉은 온천에 온몸을 담그고 둥둥 떠있을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래오래

아프거나 죽지 말아 주시기를.

<<여름을 보내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존경하는 마음의 불꽃 겐지 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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