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영숙 씨의 양지

팽이의 온도. 40

by 소요 김영돈

청양군 정산면 남천리, '바둑골 체험마을'은 너구리가 살던 곳이다. 이곳 선산에 모시면 묘는 잊더라도 밤이라도 줍고 가겠지. 그렇게 영숙 씨는 어머니 아버지를 남천리 밤나무 산에 모셨다. 영숙 씨가 72년 전 태어난 동네, 아버지의 7년의 투병 끝에 태어난 첫딸을 두고 할머니는 영숙 씨를 땅에 내려놓지 못했다. 귀하고 귀하여 흙을 묻힐 수 없다고 노상 업고 살아 하마터면 땅을 걷지 못하는 안짱다리로 자랄 뻔했다. 아래로 세명의 동생이 태어나면서 집안은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인민군도 들지 않는 산골이어서 너구리는 지천이고 바둑골 너머에 호랑이가 산다는 소문이 있어 날이 저물면 바깥출입을 하지 못했다. 아침에 눈뜨면 마당가에 너구리가 어슬렁 거렸다. '바둑골너머'는 영숙 씨에게 태초의 고향이다. 바둑골체험마을로 향하는 입구 오른쪽 아래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 전형적인 한옥집 본관, 개울을 끼고 사방이 타원형 유리로 장식되어 기도원으로 쓰였을 법한 건물, 이렇게 두 채다. 본관에 주방을 차리고, 텃밭에 토종닭과 토끼를 방목하며 '토종닭집'을 짓고 싶었다. 그녀의 손맛을 찾아 먼 길 찾아오는 손님을 맞으며 살고 싶었다. 남편과 두런두런 일하며 낮은 울타리를 따라 봉숭아를 심고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 첫눈을 기다리고 싶었다. 머위, 곰취, 표고버섯, 밤이 풍성한 바둑골 맛집을 내고 싶었다. 영숙씨는 10대에 남천리를 떠나 낯선 서울 강남구 흑석동 한국은행등사실에서 타양살이릏 시작했다. 경기도 수원, 경상도 구미, 다시 수원살이...... 콘크리트와 시린 불빛, 뼈다귀 감자탕집을 지나는 동안 남편은 40여 년을 전선회사에서 전기선을 감았다. 70년간 바둑골을 가슴에 품고 살았지만 소풍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걷기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다. 20대 결혼식 때 영숙 씨는 3남 1녀 장녀였고, 남편은 3남 1녀 막내였다. 양가 부모를 포함하면 12명의 가족이었다. 지금 영숙 씨는 동생 둘이 남았고, 남편은 홀로 남았다. 바둑골 입구에서 둘러보니 모두 늙수구레한 3명의 남자가 보였다.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는 세 남자도 영숙 씨에게는 모두 철부지다. 두 동생과 남편을 차에 두고 매물로 나온 집을 돌아 나오던 영숙 씨는 결심했다. 다 그만두기로. 몸을 보신할 토종닭도 토끼도, 머위 곰치 무침도, 표고버섯도 밤밥도...... 다 그만두기로 했다.

동생이 이런 말이 했기 때문이다.

'거기는 음지야, 이끼 못 봤어? 개울을 끼고 흘러 멀리서 보면 그럴 듯 하지만 지대가 낮고 북향이라 산그늘이 온종일 머물러요. 지금 사는 양지, 거기 좋더구먼. 일터도 가깝고, 이웃도 친절하고'


영숙 씨는 매일 6시에 일어나 1시간을 산책하고 출근한다. 식당은 집에서 걸어서 출근할 수 있다. '욕쟁이 할머니, 미슐랭, 세프, 맛의 장인'을 모두 합친 '이모'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숙 씨의 손맛은 혀를 감는다. 그녀의 멸치볶음, 고구마줄기 무침, 겉절이는 메인요리를 두배로 살리는 필살기다. 오늘 영숙 씨는 그 필살기를 싸들고 성묘를 했다. 동생들과 남편은 영숙 씨의 반찬을 미슐랭셰프의 음식보다 더 선호한다. 바둑골에는 1년에 두 번 소풍 하듯 성묘한다. 한 번은 막냇동생 생일 4월, 한 번은 영숙 씨의 생일 9월, 이 두 번의 소풍은 영숙 씨가 40이 된 장남을 잃고 나서 문득 제안한 루틴이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두 번은 보자'라고 제안한 것이다. 영숙 씨는 4월과 9월이면 첫날부터 설렌다. 남편, 동생들과 바둑골을 소풍 할 생각 때문이다. '봄과 가을' 두 번의 소풍이면 영숙 씨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영숙 씨는 양지를 떠나 음지를 기웃거리지 않기로 했다. 시원을 알 수 없는 생명줄이 72년을 이어졌으니 충분히 감사하다고, 어쩌면 과한 행복이라고. 낫이든 망치든 삽이든 예초기든 연장을 한번 들면 두 번 손가지 않게, 그가 손댄 자리가 멀끔해지는 남편은 선량하고 과묵하다. 온갖 말폭풍과 악다구니와 눈물을 모두 받아내는 무던한 사람이다. 오늘, 영숙 씨의 생일이라고 늘그막에 사과 알바를 갔던 남편은 새벽바람에 미역국을 끓여주러 귀가했다.


음지는 습하고 번잡하다. 따듯한 남향집 빌라가 영숙 씨에게는 선물이다. 영숙 씨는 양지쪽 송학빌라에 산다. '송학'은 영숙 씨가 태어난 남천리 바둑골 너머 아득한 시원의 어느 곳에서 날아오르는 '학'일지도 모른다.


(2025.09.14. 바둑골 밤나무 밭에서 영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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