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소설 39
골프 스쿼시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그리고 피클 볼. 쟁반 위에 놓인 포도처럼 내 소리통이 울려 퍼지면 거기 그녀의 시름이 피클 볼처럼 굴러간다.
‘피클, 피클, 피클’
안팎의 공기를 모두 가르며 구멍 뚫린 피클 공이 날아간다. 피클 볼 사이를 빠져나온 소리는 그녀의 소리통을 타고 신드바드처럼 날아오른다.
‘모험을 떠날까요? 공주님’
‘아니 바닷가, 쪽빛 바닷가 피클 볼 장으로 가줘’
‘하늘을 날아서요?’
‘응 하늘을 날아서’
날기 위해서는 발을 땅에 디뎌야만 했어. 긴긴 세월 동안 수십 개의 클럽, 빠른 공, 땡볕, 넓은 코트, 멀리 달아나는 공, 다리가 부러지도록 달려보았지만 떠나는 것은 떠나고 남는 것은 남아. 그래 떠나야 할 것들은 멀리 떠나버려도 상관없어. 언제나 내 손안에 마음 안에 피클 올려주는 피클 볼과 좋은 벗들이 있다면.
이제는, 많은 것들이 상관없어졌다. 분홍 피클 볼 속으로 그녀의 소리통이 지나가면, 수많은 갈채와 환호성들이 비눗방울처럼 날아올라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노을이 색색의 볼처럼 휘청이며 춤을 춘다. 소리통의 진원지 미경 씨의 가슴 한가운데에는 막아도 막히지 않는 숨통이 있다. 그 숨통을 꿀통처럼 메고 일생을 질주했다. 왜 통째 버리고 싶은 날들이 없었을까. 하물며 몸으로 통하는 소리통으로 보존해야 하는 그 몸과 마음은, 어떤 강을 건너왔을지 상상할 수 없다. 철쭉보다 진달래에 가까운 미소를 가진 그녀가 만개한 듯 웃는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그녀의 소리통이 메아리치는 해변에는, 야자수 나무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춤을 추고 붉은 포도주와 맛깔난 연어요리가 차려져 있다. 저녁은 아침이 되고 새벽 파도 위로 해살이 떠오르니 그날이 첫째 날이고 아침이 저녁이 되어 빙산이 찬바람을 불어주니 그날이 둘째 날이라.
내 소리통을 떠난 곡조여! 일생을 울려 퍼져 님 계신 곳에 닿거든 전하라
바람이 부는 해변 소리통이 울리는 저물녘에는 ‘파도와 바람과 갈매기와 붉은 노을을 마주한 미경 씨의 소리통이 울려 퍼질 거라고. 거기 정갈한 식탁 같은 피클볼 장이 차려져 있을 거라고 벗들의 웃음꽃이 만개할 거라고. '
<2025.8.20. 이미경님의 소리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