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소설 42
선자령을 넘어 성산면 칠봉로에 오봉 씨의 막국수집이 있다. 40여 년의 육수 외길, 육수를 만들어 끓일 때 국수를 삶을 때 나오는 김은, 오봉 씨가 일생동안 마주한 열기이다. 선자령 하늘목장에 서면, 하얀 바람개비 아래 숲을 가로질러 가는 구름 떼가 보인다. 소나 양의 시늉을 흉내 내는 구름알갱이가 얼굴을 덮고 지나가면 오봉 씨는 눈을 감는다. 구름 알갱이가 군불 속 뽀얀 김서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김서리가 지나가면 오봉 씨의 희끗한 머리에 작은 물방울이 맺힌다. 오봉 씨는 얼굴을 감싸고 지나가는 그 후끈한 열기가 좋다. 선량한 눈빛과 훨친한 키에 영화배우를 했다면 그레고리 팩을 넘어섰을 남자.
바람이 동해 바다와 햇볕을 안고 수천리를 달려와 안겨 뒹구는 선자령. 전나무 가문비나무 오솔길을 따라 굽이굽이 숲길을 지나가면 어딘가 상한 속을 담고 온 사람들이 움찔움찔한 것들을 쏟아낸다. 서울 한복판의 '오봉 씨의 육수집'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속이 상한 사람들의 속을 풀고 풀다가 오봉 씨의 속에 스크레치가 생겼다. 속으로 난 생채기 속으로 피가 흘렀다. 피에는 오봉 씨의 '응시, 수용, 인내, 인정’이 섞여 있었고 사나흘을 끓여도 풀어지지 않는 응어리가 있었다. 그는 풀어지지 않는 것들을 걸러내 가슴에 담아 선자령에 올랐다. 어느 겨울, 눈보라가 몰아 치던 날 녹지 않는 것들을 가슴에서 꺼내 바람개비 쪽으로 던졌다. 날개를 치며 덩어리들이 하늘목장아래로 흩어진다. 그예 다 정리하고 칠봉로에 터를 잡았다.
'여기서 쉬어가야겠다'
하고 말하며 오봉 씨는 뜨락에 월계화를 심었다. 선자령을 넘어 오봉 씨가 끓이는 육수와 막국수로 허기를 채우고 나면 뜨락에 월계화가 살포시 웃는다. 이 집에는 선자령을 넘어온 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탁 트인 주차장, 노랗게 물들어가는 멕타세퀘이어가 보초를 서고 있는 집. 봉선화 텃밭.
오봉 씨가 40여 년을 다스린 국물이 사람들 장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오후 2시 30분, 늦은 점심 밥상 앞에 앉아 풋고추와 상추를 앞에 둔 오봉 씨의 야윈 광대뼈가 오물오물 잘 녹지 않는 것들을 오래오래 씹는다.
선자령 자락의 칠봉로, 오봉 씨의 가을 오후 3시,
오봉 씨의 낮잠 시간이다.
바람이 월계화 옆에 고양이처럼 눕는다.
가을볕이 따사롭다.
<2025.9.29. 오봉막국수 오봉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