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ㅇ진 씨의 습지

60초 소설 56

by 소요 김영돈

늪은 홍합, 가재, 실잠자리, 홍학, 기러기를 품고 저물녘에는 아름다운 노을이 오두막을 장식한다. 집 앞 습지에는 봄에 심은 붓꽃이 얼기설기 뿌리를 뻗어 가고 있다. 악다구니와 쇳소리, 둔탁한 파열음이 귓전에 맴돌다 문득 찾아온 정적. 깨어 보니 ㅇ진 씨는 홀로 움막에 누워 있었다. 창문 앞 늪의 수초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소리는 여전하다. 소란이 있고 나서는 언제나 흩어진 머리와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엄마가 집을 떠났다. 연이어 오빠, 아버지가 세상 밖에 무언가를 두고 온 사람들처럼 떠났다.

어쩌면 ㅇ진 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 이 습지에는 허기를 채워 줄 홍합이 있다. 새벽에 홍합이 보인 것은 눈에 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텅 빈 오두막의 적막과 함께 몰려온 허기가 눈에 불을 켜지게 했다. 허기는 전류를 흐르게 하는 폭발력이 있다. ㅇ진 씨는 습지로 난 길을 보다가 절뚝이며 걷는 그림자와 발을 보았다. 발끝의 발톱, 발톱이 파 들어간 엄지발가락이 퉁퉁 부은 사람이 습지를 건너 오두막으로 왔다. 그날 엄마의 처방전이 떠올랐다. 상처가 날 때마다 약초를 빻아 치료해 주던 엄마의 처방전. 환부를 보니 오장육부가 보이고 발톱의 증상과 통증의 근원이 어느 장기의 허실로 연유하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ㅇ진 씨는 그 남자의 발톱을 후벼 약초를 얹고 풀잎으로 동여매어 보냈다. 며칠 후 그는 먹을 것을 문 앞에 두고 갔다. 숲의 들꽃과 함께였다. 엽서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당신은 천사예요'

허기가 길을 찾고 길에서 발을 만나고, 발이 발톱을, 발톱이 오장을, 오장이 육부를, 육부가 혈기로…….

불꽃놀이를 함께 보기로 했던 그 남자는 밤이 새도록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한낮에 습지 옆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보였다. 그동안 가족에 없었던 ‘나’. 가족이란 둥지에서 이방인이었던 나, 세상의 변방 습지로 떠도는 '나'를 본 것이다.

아들 둘을 데리고 온 한 남자와 아홉 살 딸을 둔 한 여자가 도망쳐 온 습지. 그 두 남녀의 늪에서 태어난 아이가 ㅇ진 씨였다.

불꽃놀이는 꿈이었을까. 그날의 약속은 그녀 마음속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습지의 모든 일들이 꿈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족들이 그녀를 피해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지의 세월이 하염없이 흘렀다. ㅇ진씨는 생각했다. '습지의 시간, 생명의 무늬가 얼룩지면 어떤 양탄자가 될까.'

ㅇ진 씨의 양탄자는 하늘을 날까. 아니면 오두막 바닥의 습기를 빨아들일까. 축축한 양탄자를 햇볕에 널어 둘까. 가슴에 새겨진 세밀화 전시회, 발톱이 긴 홍학, 홍학이 물고 있는 홍합의 속살이 저만치서 춘풍을 몰고 온다. 이 광란의 습지에서 생명의 아우성을 고즈넉이 바라보고 있는 ㅇ진 씨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한다.

“이제 알겠어, 당신이 나를 이 습지에 보내신 이유.”

ㅇ진 씨는 신발을 벗고 늪으로 잠수한다. 그리고 짧은 기도를 하고 주문을 외운다.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 이 생명을 당신께 맡깁니다"

“준비 무브 기도, 준비 없이 무브. 무브 기도 기도, 기도 기도 기도

ㅇ진 씨는 언제나 습지의 한가운데에서 움직이고 있다. ㅇ진 씨는 물 잡기를 할 때 주문의 장단에 맞추어 리듬을 탄다.

숨이 터진 ㅇ진 씨는 이 습지를 오래오래 헤엄쳐 나갈 것이다. 숲에 햇살이 스미면 셀 수 없는 생명들이 ㅇ진 씨를 따라 움직일 것이다. ㅇ진 씨는 노을 진 저녁부터 한낮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헤엄쳐 나갈 것이다.

빛나는 발톱에 단단한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습지로 모여들고 있다. 그중에는 예의 그 손엽서의 주인공도 포함되어 있다.

<습지의 천사 ㅇ진 씨의 저자 강연회 「가재가 노래하는 땅」>

〈2026.1.4 태재 제빵소 ㅇ진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