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선물 / 박도현

60초 소설 55

by 소요 김영돈

선물을 찾아 헤맸었다. 눈이 내릴 때, 엄청난 추위가 몰려올 때, 때아닌 겨울비가 내리는 날도. 회사 일로 바쁠 때도 크리스마스 산타의 선물은 빼놓을 수 없었다.

바비인형, 백설공주, 곰돌이 푸, 영화 「빙하시대」의 다람쥐 인형.

선물 카드 첫 문장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여명에게~

여명아, 산타 할아버지야~”

이 카드를 머리맡에 두고 나면 한 해를 잘 살았다고 안심이 되었다. 연말과 세모는 선물 이야기를 덧붙이고 빼다가 보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는 산타가 아비일지도 모른다는 눈치를 챈 듯했다. 처음에는 100% 산타였다가, 다음에는 의심, 다음에는 산타는 아비가 아니라는 생각, 다음에는 알면서 묵인하며 선물을 받았다.

어느 해 어느 날 문득, 선물을 잊어버릴 만큼 서로가 바빠졌는데,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스무 살 남짓 되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딸의 방에 쌓여 있던 선물들이 모두 달아났다. 아니,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모두 주인을 찾아 떠났을지도 모른다.

첫눈 온 날 바퀴 자국을 남기며 쳐들어오는 탱크 같은 시간이 그렇게 선물의 추억 한가운데로 지나갔다.

그렇게 선물 없이 8년간 먼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 너는 성인이 되었다.

너는 2025년 1월 짝을 만나 둥지를 틀고, 12월 1일에 도현이를 낳고, 12월 27일에 모유를 수유하고 있다.

“아들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딸에게……”라고 썼다가 서둘러 지우길 몇 번을 그랬다.

그간의 선물들이 흩어져 돌아가 이 아이를 데려온 느낌이랄까?

3시간마다 자고 먹고 울고, 싸고 자고 먹고 울고…… 냅다 자고 그렇게 스무 시간을 자고. 그렇게 네 잠을 앗아가는 녀석에게 너는 두런거린다.

“배고팠어요? 잘 잤어요? 울고 싶었어요?”

모유를 먹이고 트림시키고 씻기고 재우고 다시 토닥이며, 하루하루를 눈길 위에 선명한 탱크 바퀴 자국보다 더 견고한 시간을 보내는 너를 본다.

‘백일해 주사 맞고, 사람 많은 열차 안에서는 마스크 쓰고, 집 안에 들어서면 외출옷 벗고 실내 옷으로 갈아입고 즉시 손 씻고, 특히 손 소독은 화장실 갈 때마다…… 뽀뽀는 절대 금물, 술 마시고 아이 근처에 접근 금지…… 한 번 들키면 고등학교 때까지 뽀뽀 금지. 예전에 비해 넘기 힘든 번잡한 조건들이 첩첩산이다. 절대 소리를 크게 내지 말 것, 실내는 뒤꿈치 들고 보행, 잠의 리듬을 깨면 바이오가 흐트러져 아이 건강에 안 좋고……’

나는 도현이를 몰래 안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내 말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일단 들어 둬. 세상은 이보다 더 큰 장벽이 있고 규칙이 있어. 물론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절대 넘을 수 없고 지키기도 힘들어. 중요한 건 네 심장에 뚱땅거리며 차곡차곡 쌓이는 어떤 울림 속에 있단다. 알아들었으면 할아버지 엄지손가락 꼭 쥐어 봐.”

녀석은 주먹을 꼭 쥐었다.

나는 신이 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살다가 정 힘들면 나한테 오렴. 설산을 넘는 법을 귀띔해 줄 테니.”

“어? 아빠 또 어디 갔지? 아기 데리고. 설마 손도 안 닦고……”

하는 소리가 거실에서 들렸다.

“어~ 트림시키려고.”

돌연 등에서 진땀이 났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까치발로 걷고 문을 조용히 닫고 또 손을 씻고 하다 보니 알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왔다. 잠 속에서 저 멀리 빙하를 뒤로하고 도현이가 맨발로 달려오고 있다. 그 뒤쪽에 도현이를 쫓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단연 선두는 ‘도현 어미’, 내 딸이다. 흔들리지 않는 어미의 품새로 아들을 쫓으며 돌진해 오고 있다.

너의 아버지, 아버지의 어머니, 어머니의 아버지, 아버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탱크 같은 모습으로.

그래, 어미들은 그렇게 세월을 견고하게 맨발로 땅을 지르밟으며 생명을 키워 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겨운 세상에서 희망과 환희와 눈부신 햇살과 빗줄기와 무지개를 품고 만들고 뿌리며.

딸, 기억하니? 네 선물들이 다들 어디 있는지. 선물을 준비할 때마다 울리던 순간순간의 쿵쾅거림이 모여 지구별 여행자를 인도하고 환대하고 있구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을 때마다, 그 리듬에 맞추어 숲의 정령들이 진군하는구나. 성탄 이후의 겨울비처럼 조용히 촉촉이.

나는 기억한다.

‘박도현과의 은밀한 거래를, 절대 지워지지 않을 날인을.’

맨살에 새겨진 인두 자국처럼 선명하게 나는 가슴으로 느낀다.

검은 눈동자, 꾹 다문 입술. 손을 내밀자 내 손을 꽉 움켜쥐며 지구별 여행자 박도현이 내 엄지손가락을 꽉 쥐었다.

Present is present

(현재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