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소설 53.
마른 입술에 겁먹은 표정이었다. 왜 나만 이런 시련을 감당해야 하는지 억울했다. 딸은, 병마로 투병 중인데 돈이 없어 감사 헌금할 돈을 아비한테 달란다고 말한 박ㅇ진 성도를 부럽 다며 '내가 그런 고민 있으면 원이 없겠다'라고 말했다. 희귀 백혈병으로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딸을 두고 하는 말이다.
ㅇ진씨는 뜨악하며 놀랐다. 겨울 한기에 마른 입술들은 찢어지기 쉬운 가을 잎새 같다. 웃거나 울면 터져 피가 나올 것 같은 잎새, 나무 위로 새들이 날아들 때마다 잎새는 우수수 떨어졌다. 그렇게 아슬아슬 감추어둔 속을 드러내며 7주를 보냈다. 생에 처음 믿음에 대해 죽음에 대해 신앙에 대해 영접에 대해 속내를 드러냈다. 나눔의 시간이 갈수록 낡은 외투에서는 냄새가 풍기고 '내 삶이 내 뜻한 대로가 아닌 무엇인가 더 큰 힘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ㅇ환 씨의 인생에 선물처럼 다가온 '7주
(025.9.21~12.20).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ㅇ환씨 생각의 외투가 낡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던진 것, 칼날 같은 추위가 닥쳤지만 견딜 만한 것, 새 외투를 입으려면 몸을 녹이고 사우나에 몸을 담가야 한다는 것, 더 이상 인생에 간을 보아선 안된다는 것, 이제 시간이 없다는 것.
7주 동안 홀딱 벗은 자신의 모습에...... , 민망하고 어색한 마음 때문에 매일 몇 번을 울고 웃다 입술이 찢어졌다.
겨울 새들은 우는 것일까, 웃는 것일까, 말하는 것일까. 어쩌면 저토록 활기찬가.
<마음을 홀딱 벗고 새소리를 들으며 귀가하는 날은 마음이 복잡했다>
어떻게., ... .
외투 없이
홀딱 벗고,
저토록게 생기 있게 살 수 있는가?
겨울새의 지저귐을 들으니 마음속에 부유하던 말들이 먼지처럼 일렁거렸다. 어디서 들었던 소리인가, 먼 추억의 뒤안길에서 어머니의 어머니가 들려준 말들인가. 아버지의 삼신할매가 읊조린 말인가. 그 말들이 입으로 새 나왔다.
환아, 새소리 들어보렴 그리고 웃어보렴 아주 재미나단다.
산비둘기의 구구 국구국국
소쩍새의 소쩍다 솥 적다.
뻐꾸기의 뻐뻐국 뻐국.
그리고
사람 새의 마음을 벗겨내는 울음소리
'홀딱 벗고 홀딱 딱' 사람새는 들새가 부러워 새를 희롱하는 소리를 낸단다. 잘 들어보렴.
'홀딱 벗고 홀딱 딱'
그날 ㅇ환씨는 모든 새소리가 들렸고 그 뜻도 알아들었다.
장ㅇ환 씨는, 첫날의 석고 같은 표정을 풀고 조금 웃었다. 살얼음이 살짝 녹는 듯 마음이 쩍 하고 금이 갔다. 마른 입술에서는 피가 났다. 웃음 때문인지 울음 때문인지, 그리움 때문인지. 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왈칵 솟아나왔다.
ㅇ환씨는, 누더기 외투가 타면서 풍기는 지독한 매연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 이라고 중얼거렸다.
신도시 아파트 관리소장은 수많은 욕망들을 추슬러야 하는 끔찍한 일이지만 이는 ㅇ환씨가 제일 잘하는 일이다. 그동안 잘해냈다, 누더기를 걸치고 용케 잘 살아냈다.
ㅇ환씨의 미소 속에는 희미한 기쁨이 스며있다. 그건 아파트주민이 내는 꽹과리 같은 소리를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은 기쁨이었다.
7주를 마치고 ㅇ환씨는 문득 사는 게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 어린아이 때는 어른 말을 따라야 하고, 어른이 되면 간을 볼 시간이 없다는 거, 아이에게 줄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하나님은 살아있다는 것'
관리소장 ㅇ환씨는 친구를 얻은 기쁨에 밤잠을 설칠지도 모른다. ㅇ환씨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다짐했다. 마음을 홀딱 벗고 나면, 거기에 존재하지 않은 일들과 거추장스러운 말들과 다 해진 에고들이 철 지난 외투처럼 뒹굴것이다. 떨구어 태워야 할 낙엽처럼.
금세 겨울 한가운데에 도달하는 게 인생이다,라고 중얼거리며 ㅇ환씨가 새로 준비한 외투깃을 여민다.
그 품새는, 예전의 그인지 몰라볼 정도다.
<2025.12.20. 커반에서 장ㅇ환씨를 포옹하고 귀가하는 길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