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소설 66
네가 내게 올 수는 없지만 내가 반드시 너를 보러 가마. 가서 너한테 잘 살았다고 얘기하마. 그때까지 기다려주렴.
죽음이라는, 명백한 사실이 우리 앞날에 놓여있다. 벼랑, 논두렁, 길섶, 안방, 침대, 도로 한가운데 가리지 않고 어느 곳에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실은 자신이 죽음에 임박하거나 누군가 그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알아차린다. 죽음을 지금 당장 알아 내 뼛속 깊숙이 담을 수 있다면 이 삼월의 파종을 알리는 빗소리가 쓸쓸하지 않으리라.
주변에 서식하며 종종 나를 잠식하는 것이 있다.
'나도 죽음정도는 알만큼 안다는 투로' 말하는 교만한 것.
50대에 회심한 톨스토이는 참회하며 이 죽음과 맞섰다.
'허무와 쓸쓸함, 생기와 성장'
K 씨는 그녀가 저수지나 소나무, 창고 쪽으로 걸어갈 때 유심히 그녀를 지켜본다. 그녀가 제대로 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없애버리고자 결심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짙은 입술 화장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뱀의 입술을 닮았다. 며칠을 굶주리다 살아있는 쥐를 발견했을 때 서두른 탓이다. 쥐의 혈관이 터져 묻은 피. 쥐를 급히 삼키느라 피가 흐르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가 '뱉어내는 말'은 입술에 묻은 피보다 더 진하다. 피를 감추기 위해 덧칠한 붉은 립스틱처럼, 그녀의 말은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다. 그녀는 말끝에 늘 이런 말을 덧붙인다.
'내가 아파서, 다 해봐서, 당해봐서, 넌더리가 나서, 지긋지긋해서, 내가 다 알아서, 너희들이 뭘 몰라서.......'
그녀는, 위기의 부모와 과거의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 부모자녀관계, 후반기의 찐 삶 유지법, 관계의 지름길 등 자기 통합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잘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내적 외적 현상을 통합하는 능력, 즉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라고 충고한다.
충고 직전에 그녀는 상당한 통찰력으로 상대가 얼마나 자신을 모르는지, 가능성이 없는지, 마음의 눈이 멀면 얼마나 한심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시작한다.
도움을 주고 난 날은, 7할의 우울과 2할의 자기 연민, 그리고 0.5할의 절망, 0.5할의 자위가 그녀를 엄습한다. 그녀의 판단이 얼마나 빗나가는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명 인사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그녀 홀로 알아채지 못하는 유명인사. 그런 유명세는 어떤 것일까?
방황하는 사람들을 찾아 '통찰력'을 과시하며 시험하는 시간. 그 시간들은 계속 이어진다. 그 힘은 그녀의 0.5할의 자위(나는 괜찮을 거야, 또는 괜찮아야 해 하는 합리화)에서 나온다. 하여 그녀의 환부를 들춘 사람은 0.5할의 질긴 미늘에 걸려들어 입술이 찢어지고 이별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건, 죽음에 임박해서야 평생 널려있던 죽음을 알아채는 일과 같다.
3월, 에고가 눈물을 흘리며 저수지로 간다. 나는 그녀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저수지 깊숙이 잠겨 살은 무기질이 되어 참붕어의 먹이가 되고 뼈와 두개골은 가물치의 그늘 막이와 놀이 터가 되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눈물을 흘리는 에고는 에고가 아니니 그래서 3월의 비는 에고임 이랴. 어쩌면 그녀가 저기 능선 너머에서 복사꽃을 물고 걸어 올 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눈먼 봉사가 될지라.
<2026.03.18. 봄비 내리는 모가, 진가호옆을 거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