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광태 씨의 선물

60초 소설 67

by 소요 김영돈

'나쁜 놈이네, 너 정말 힘들겠다'


광태 씨의 공감법이다. 우연히 친구들끼리 하는 말을 듣던 중 '걘미래 없잖아'하는 대상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학생을 상담하는 광태 씨의 상담기술. 광태는 수련해 보니 상담은 수련이 쌓일수록 '나 보기'야 상담자든 내담자든 할 것 없이 모두 각자 ' 자기 보기 싸움이야' 하고 말했다. 15년 전 상담인턴 수련 오리엔테이션 이벤트로 선물 교환하기 행사가 있었다. 1만 원 정도의 선물을 준비하기였다. 선물에 무작위로 번호를 붙여 놓고 30여 개의 번호표를 섞어 이 번호를 무작위로 선택해서 해당번호에 맞는 번호의 선물을 갖는 것. 그날 광태 씨는 행사 전 이렇게 말했다. 형이 내 선물 가지면 참 좋을 텐데 지금 사이코 직장상사 때문에 사표 냈다면서요. 왜 다들 눈감을 일이 형한테만 턱 걸릴까,는 형한테 온 기회일지도 몰라요. 상담자로서는 선물이죠. 자기 보기 타임. 그거 이 책 보면 최고일 거예요, 하고 말하며 엄지를 치켜주던 광태 씨. 나는 그가 내 말을 듣고

'거 나쁜 새끼네 정말, 형 정말 힘들었겠다'라고 말했을 때 하마터면 그 앞에서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화장실에 가서 코를 눈물과 함께 풀어내고 시뻘건 눈을 들키지 않으려 찬물로 세수까지 하고 돌아왔었다. 인생의 전환기였다. 직장생활에 정점을 찍었던 페라노이드 상사, 외면하는 동료, 부조리한 공동체의 뻔뻔한 이기심, 그리고 닥쳐오는 숨 막히는 20년의 세월.

그때 만났던 책이 녹색 표지의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였다.


<잠은 짧은 휴식, 죽음이야말로 진정 평온의 세계, 진짜 나를 살피는 것을 넘는 다른 깨달음은 없다>

내가 무작위로 번호를 뽑고, 그 번호가 적힌 선물이 광태 씨가 준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추첨이 끝나고 광태 씨가 내가 손에 든 책을 보고 탄성을 지를 때 알았다.


그는 내 그럴 줄 알았다면서 기뻐했다. 광태 씨는 그날 축하주를 사줬다. 그날 우리는 끝이 없는 상담수련의 길, 시간보다 관점, 공감과 관계형성, 상담시장의 지식 피라미드, 변화의 힘, 광태 씨의 연애담, 낙태와 이별, 우리는 누구인지, 나는 와 여기 있는지를 밤새 나눴다.


그 책은, 나의 직장생활을 지속시켰다. 그 후 누군가 책을 추천할 때는 늘 광태 씨가 떠올렸다 끌어들였다. 그 책은 10년 전 은우씨한테 갔다.

효자촌 종로빈대떡집, 논술선생, 황칠공예가, 50대 보헤미안, 여자 치과의사 그리고 N패션이라는 의류업체를 운영하던 은우 씨가 이빨치료로 연이 되어 한자리에 모였다. 묘한 만남이었지만 자유롭고 유쾌했다. 다들 종로빈대떡 근처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금세 친해졌다. 논술선생을 포함해서 다들 책을 선호해서 책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나는 누구인가?'는 은우 씨한테 갔다.


후 그녀의 '도산, 합의 이혼, 자녀유학, 양육권, 미술전시회, 도슨트'같은 말이 간간이 들려왔고 책 이야기를 꺼낼 기회가 없어졌다. 책을 읽었는지, 언제 돌려줄 것인지 몇 번 시도했지만 '아참, 그거 읽다 말았는데 어디 있는지, 다음에 줄게'한 적이 서너 번 있고 나서 그녀는 '경황이 없다'라고 말하며 그녀 허리만큼 가는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


8년 전 부산어묵집에서 그녀를 만났다. 책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광태 씨와 함께 떠오른 책이기도 했고 마하리쉬의 눈빛을 찾고 싶은 나만의 의식처럼.

그녀는 입술에 떡볶이 고추장을 묻히며 눈에 초점을 잃은 채 안절부절못했다. 김밥하나를 입에 물고 추억이 퍼올려진다며 보헤미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쉬지 않고 흔들리는 눈동자만큼 자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들락거렸다. 그녀는 보헤미안에게

'어떻게 지내요? 궁금해서요. 왜 그렇게 전화가 안 돼요. 형, 왜 그렇게 말해요. 보고 싶어 안부 묻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하고 말하며 다섯 번쯤 들락였는데 들어올 때마다 도라지 향의 담배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날, 보헤미안은 오랜만이라면서 내게 문자를 보냈다.


'은우씨, 얼른 보내주세요. 우울과 집착, 자해가 우려돼요. 3년 내 그래요'


나는 은우 씨가 여섯 번째 자리를 떴을 때 일어섰다. '먼저 가요. 건강 잘 챙기시고 평온하세요'하는 문자를 남겼다. 2018.12.24 ' H대표와 우파진영에서 진행하는 1천만 전화 걸기 운동입니다. 지인분들께 많이 알려주세요. 이 운동을 일으켜야겠습니다'하는 갑작스러운 문자가 왔었고 2023.11.23. 을 끝으로 은우 씨소식은 끊어졌다. 책소식도 함께 끊어졌다. 광태 씨는 인턴을 마치고 떠나 소식이 없다. 지금 은아 씨 프로필에는 Art director라고 되어있다. 나는 그녀가 책을 읽고 돌려줄 날과 광태 씨의 책이 나에게 찾아온 날과 그 책이 은우 씨에게 건네지던 날을 생각한다. 광태 씨 덕분에? 아니 성자 마하리쉬 덕분에, 때로는 은우 씨 때문에 질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2026. 3. 22. '질문하는 신앙, 응답하는 삶' 강영안교수님 특강귀갓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