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돌아오지 않는 강

60초 소설 5

by 소요 김영돈

은영은 강을 건너고 나서 다리를 폭파해 버렸다. 다리 이편의 은영은 더는 뒤 돌아보지 않는다.

눈물 강을 건너온 은영은 더는 울지 않기로 했다.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건너온 강 저편의 삶은 상상을 초월하는 세월이었다. 무릎에 피가 나고 허기가 지고 주먹을 부르르 움켜쥐어도 좀처럼 거역할 수 없던 순간들…. 그래서 한때는 목숨줄을 놓아버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은영은 운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저기 은영이 가을비를 맞고 있다. 은영의 생명력 앞에서 가을비가 멈칫멈칫 낙엽을 쓰다듬는다.

차갑고

애달프고

슬픈 빗소리가 낙엽 위에서 들려온다.

이 비가 그치면 겨울이 올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은영은 ‘다시 봄이 올까?’ 하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차가운 비를 맞았다.

다리가 폭발할 때 은영의 추억도 모두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추억이 모두 떠내려가고 그 추억 위로 비가 내린다. 돌아오지 않는 강 저 너머로 사라진 추억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리의 폭발음과 함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비가 그쳐가는 틈새로 가뭇가뭇 보이는 햇살, 저 햇살의 온기로 은영은 추운 겨울을 날 것이다. 햇살이 비추는 뜨락에 앉으면 세상이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온다.

‘슬픔 따위가 무슨 상관?’하고 되뇌며 은영은 눈을 치켜뜬다.

모두 떠나버렸지만, 은영은 손을 내밀어 자신의 거북 등 같은 손을 만져본다. 사연이 가득 담긴 손, 그 손위에 자신의 다른 손을 포개며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만질 수 있잖아, 살아있잖아’ 은영은 강 아래편으로 소리 없이 흘러간 흙탕물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강물은 돌아오지 않아. 그리고 나도 흘러’

오늘 은영은 자신의 응원군이 자신의 몸 어딘가 구석에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차가운 비를 맞는 또 하나의 나, 푸른 배춧잎이 내 주머니에서 만져졌기 때문이다. 은영은 거친 손으로 배춧잎을 움켜쥐고 벌떡 일어서며 말한다.

‘김장철이 왔어! 이 배추로 김치를 담가야지’


〈그해 초겨울 *은영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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