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 계속 살아간다는 위안

영화 리뷰

by 마리모

드라이브 (2024)

Drive

정연 감독


"이제 진짜 집에 가는 일만 남았네요" - 지현


<드라이브>는 세 편의 독립된 단편영화를 하나로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각각의 소제목은 ‘여름에’ ‘겨울에’ ‘드라이브’다. 그중 ‘여름에’에는 특이한 씬이 하나 있다. ‘최이선’이 외딴곳에 방치된 차로 들어가면서부터 이어지는 장면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이선의 눈앞에 생일 파티를 하는 학생무리가 등장한다. 그들은 이선이 들어가 있는 차를 에워싼 채로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해 준다. 케이크와 밀가루 따위가 차로 날아든다. 이선은 이 상황이 놀랍고 당황스럽다. 그리고 곧 중고차 딜러가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이 씬은 영화의 스토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이질적이며 독특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예를 들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수석이 물 위로 떠오르는 이질적인 장면도 그렇다).

영화 <이키루>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라’라는 별명의 ‘와타나베 칸지’가 마침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은 순간, 식당에 울려 퍼지던 생일 축하 노래처럼 말이다. ‘살다’라는 ‘이키루’의 뜻처럼 칸지는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문밖으로 나갔다. 그렇다면 ‘여름에’에서 이선의 겁먹고 놀란 표정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씬 자체가, 연인과 이별하고 새 삶을 앞둔 이선의 무의식은 아니었을까. 아기가 태어날 때 울음을 터트리듯이, 새로운 시작이 두렵고 무서운 건 어른도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어찌 됐든 감독은 전체 스토리와 연관이 없어보이는 그 장면을 영화에 넣었다. 그 말인즉, 감독에게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을 힌트 삼아 영화를 되돌아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키루> Living_1952


우선 <드라이브>라는 제목처럼 매 편에는 자동차가 등장한다. 차는 모두 다르지만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등장인물이 연인과 이별하면서 떠넘겨 받은 일종의 애물단지라는 점이다. 이렇듯 영화는 절절한 사랑이나 애절한 이별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끝나고 남겨진 것들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것이 ‘차’이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이다. 각자에게 남겨진 차를 처리하는 과정 혹은 방식이, 이 옴니버스 영화 <드라이브>의 핵심이기도 하다. 정말로 치워버리고 싶어도 쉽게 치워지지 않는 것은 ‘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버려지고 방치되어 더러워진, 녹슬고 오래된 차에는 애써 잊고 있던 것들(기억, 감정)이 한가득하다. 이처럼 인물들에게 남겨진 기억과 감정들을 ‘차’에 투영하여, 세 편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남겨진 것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영화 속 인물들은 그러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영화는 물리적으로는 이별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이별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연애에 미숙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에게 떠넘겨지고 남겨진 것들(차) 즉, 남겨진 기억과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름에’에서는 사진이라는 추억의 형태로 남겨지기도 하고, ‘겨울에’에서는 차와 핫팩처럼 버려버리기도 하며, ‘드라이브’에서는 낱낱이 해체되어 완전한 마침표를 콱! 찍어버리기도 한다.

각각의 결말부를 살펴보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에게 남겨진 차를 처리한 인물들은 결말에서 또다시 어딘가로 이동하며 끝이 난다(‘여름에’에서는 버스를 타고, ‘겨울에’에서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며, ‘드라이브’에서는 두 사람이 각자 다른 길로 프레임 아웃 한다).

여름과 겨울이 주는 의미는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겠으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드라이브>라는 제목의 의미는 조금 더 선명해진다. 자신에게 남겨진 것들을 추억으로 삼든, 버리고 떠나가든, 완전히 폐차해 버리든, 어쨌든 멈추지 않고 어디론가 나아간다는 것.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더워도(여름에) 추워도(겨울에)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드라이브)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듯한, 담담함이다. 그저 어디론가 나아가는 것이다. 정해져 있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유유히 <드라이브>하듯이 자신에게 남겨진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하고, 또다시 어디론가 나아간다.

포인트는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담담함이다. 이러한 느낌을 받은 이유는 영화의 톤 앤 매너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각 에피소드의 결말과도 관련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결말에서 인물들은 다들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끝이 나는데, 그 끝에서 인물들은 모두 혼자다.

이것은 마치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은 여러 명이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동차를 모는 것은, 다시 말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결국 혼자라는, 조금은 쓸쓸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혼자라는 말은 일생을 마칠 때도 결국은 혼자라는 쓸쓸함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 쓸쓸함을 견디고 우리가 삶을 계속 <드라이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 살아야 한다.’는 희망찬 용기가 아니라 ‘계속 살아간다.’는 쓸쓸한 위안을 건네는 이 영화의 비밀을 조금 더 파헤쳐보자.

<드라이브> Drive_2024


<드라이브>는 옴니버스 영화라는 형식 때문에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 편의 연관성이다. ‘여름에’와 ‘드라이브’에 나오는 ‘최이선’과 ‘신지현’을 김시은 배우가, 그리고 ‘겨울에’와 ‘드라이브’에 나오는 ‘최태현’과 ‘김상현’은 조의진 배우가 연기했다. 때문에 세 편의 영화는 미묘하게 연결된 하나의 장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름에’에 나왔던 이선과 ‘겨울에’에 나왔던 태현이 ‘드라이브’에서 만나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거나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같은 배우가 연기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동일한 인물로 보인다는 점이 첫 번째 근거이다. 두 번째는 ‘드라이브’의 지현(김시은)과 상현(조의진)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나누는 대화가 앞선 두 편의 에피소드(여름에, 겨울에)를 간접적으로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은 의도적으로 극 중 인물들의 이름을 에피소드마다 다르게 설정했다(이점은 엔딩 크레딧에 적힌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통해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세 편의 이야기가 아주 느슨하게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치 멀티버스나 평행세계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평행세계의 다른 인물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최이선은 시간이 흘러 신지현이 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최태현은 역시 김상현이 된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영화를 통해 추측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관객들 각자의 머릿속이기 때문이다.

그럼, 감독의 의도를 추측해 보면서 김시은 배우가 연기한 최이선과 신지현을 비교하여 살펴보자. ‘드라이브’의 앞부분은 ‘여름에’와 유사하다. 지현이 이선처럼 전 남자 친구에게서 차를 얻게 되는 점이 그렇다. 이선과 지현은 언뜻 보기에 비슷한 일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헤어진, 혹은 헤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남자 친구의 차를 얻게 된 주인공이 누군가를 만나 특별한 하루를 겪은 후에 차를 팔거나 폐차한 뒤 돈을 받고 헤어진다.

‘여름에’에서 이선은 연인(차)과 이별하고, 추억(사진)은 간직한 채, 앞으로 나아갈 힘(마음)을 얻는다. 그에 비해 ‘드라이브’에서 지현은 어떠한가? 지현이 얻은 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나는 그것을 새로운 감정으로 보았다.


‘드라이브’의 결말부를 자세히 살펴보자. 늦은 저녁, 노을 지는 바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로의 쓸쓸함을 공유한 지현과 상현은 아마도 하룻밤을 같이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음 날, 차를 타고서 집으로 갈 일만 남았다던 두 사람의 차가 고장 난다. 그렇게 그들의 차는 출발하지 못한다. 폐차장은 겹겹이 쌓인 차체와 뜯긴 부품들이 가득하다.

<드라이브>에서 자동차는 중요한 메타포로서, ‘기억과 감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앞서 얘기했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타고 갔어야 할 차가 그들의 눈앞에서 해체되고 찌부러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단순히 차가 해체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겨울에’에 나오는 대사 “그게 그냥 차인 줄 알아요?”처럼)

지현이 상현의 손을 붙잡지 못하고 헤어지는 ‘드라이브’의 결말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때문에 관객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지현은 또다시 반복될 미래가 겁이 났을 수도 있고, 자신들의 관계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각자에게 남겨졌던 감정(차)을 짧은 만남을 통해 해소(폐차)했으니,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됐든, 지현에게 새로운 감정이 싹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이와 같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여름에’와 ‘겨울에’ 때문이다. 이선과 지현, 그리고 태현과 상현은 개별적인 에피소드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분명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감독은 개개인들이 느끼는 사적인 감정이 사실은 모두 비슷하며,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살아가는 것은 혼자이지만 그 쓸쓸함은 다 비슷한 것이라고.

남겨진 추억도(여름에),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도(겨울에), 완전히 끝나버린 감정(드라이브)도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우리는 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그러니 쓸쓸해도 살아간다고.

짧은 인연 속에서 위로를 얻기도 하고, 새로운 감정이 싹텄음에도 용기 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드라이브> Drive_2024

저자

YouTube 영화전문채널 Darksome 등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시나리오와 소설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