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박찬욱 감독
"다 이루었다" - 만수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자신의 삶에 만족하던 만수.
영화는 그런 만수와 가족의 행복한 일상으로 시작한다.
만수가 25년간 다니다 해고당한 제지 회사의 이름은 ‘태양’이다.
그는 일부러 '햇빛'이 드는 자리로 가서 가족을 부둥켜안는다.
이처럼〈어쩔 수가 없다>에서 ‘빛’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중요한 재취업 기회인 ‘파피루스’ 면접장에서는 반사된 햇빛 때문에 면접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으며, 아들의 비밀을 사과나무 아래에 묻은 정원에서는 만수에게 내리쬐는 햇빛을 아들 시원이가 가려준다.
“햇빛을 바람에 쌈 싸 먹으라”는 아라(엄혜란)의 대사나, 마지막 장면에서 공장의 인공 빛이 작동되는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빛’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게 만든다.
만수는 다른 제지 기술자들과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고 아들 시원과는 서로의 비밀을 사과나무 아래에 묻어두었다는 점에서,
딸 리원과는 타인의 말을 따라 하는 ‘반향어’를 쓴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그 의도가 드러나며,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운을 남긴다.
<자본주의적 전쟁터로서의 사회>
25년 동안 일한 ‘태양’에서 해고당한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만수는 강력한 라이벌인 범모에게 총을 겨눈 채 외친다. 이에 범모는 항변한다.
“돈을 못 벌면 집이라도 팔아, 마트 가서 짐이라도 날라!” - 만수
“나는 전문가야! 나는 기술자야!” - 범모
‘범모’와 ‘만수’는 제지 공장에서 25년간 일한 기술자이지만, 이제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이자 구직자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감독은 이들이 마치 ‘한 사람의 분열된 자아’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시조’와 ‘선출’ 또한 같은 맥락에서 만수의 다른 얼굴로 기능한다.
결국 만수가 이들을 살해하는 행위는 자신을 향한 살해, 즉 자기파괴의 여정으로 읽힌다.
과거의 70~80년대가 ‘반공’과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을 억압한 시대였다면,
오늘날은 자본주의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서로를 짓밟으며 경쟁해야 하는 무한경쟁 시대라 할 수 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이러한 현실을 ‘살인을 통한 경쟁자 제거’라는 블랙코미디적 설정으로 재해석한다.
그러나 단순히 냉소에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묻는다.
“정말 어쩔 수 없는가?”
만수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한 인물로,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당한다”는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총을 간직했다고 말한다. 그의 아들인 만수 역시 “지금은 전쟁 중”이라며 경쟁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총을 들었지만, 만수는 분재를 다듬듯 자신의 인생을 억지로 제지회사로 되돌리려 한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을 “어쩔 수가 없다”는 말로 합리화한다.
결국 <어쩔 수가 없다>라는 제목은 한 개인의 체념을 넘어, 현대 사회 전체의 냉혹한 논리를 응축하고 있다.
<반향어>
만수의 딸 리원은 자폐 증상을 보이며 타인의 말을 따라 하는 반향어를 사용한다. 첼로의 천재적 소질을 가진 서번트 증후군의 징후를 보이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반향의 모습이 아버지 만수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만수는 범모가 아라에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따라 하며, 그 말을 아내 미리에게 반복한다.
리원이 분절된 음을 연주하듯, 만수도 자신의 분절된 언어를 손바닥에 메모해 둔다.
그러나 둘의 차이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가’에 있다.
리원은 자폐로 인해 정말로 어쩔 수 없어 보이지만, 만수의 “어쩔 수가 없다”는 자기합리화에 가깝다.
결말부에서 리원이 자신만의 악보로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은, 살인을 통해 일자리를 확보하고 공장에서 홀로 기뻐하는 만수의 모습과 극명히 대비된다.
리원은 결국 반향을 넘어서 자신의 언어를 찾은 인물이고, 만수는 타율적 반복 속에서 자신의 언어를 잃은 인물이다. 결국 그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서 기계의 부속품처럼 어둠 속에 묻힌다.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 - 만수
따라서 만수의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세상을 전쟁터로 이해한 인간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자기합리화로 볼 수 있다.
<태양과 빛>
영화 속 ‘햇빛’은 상징적으로 반복된다.
만수가 해고당한 회사의 이름은 ‘태양’,
면접장에서의 눈부신 햇빛,
사과나무 아래에서 아들이 가려주는 햇빛,
아내 미리가 독촉장을 확인할 때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라는 편지의 이면에는 ‘당신은 해고됩니다’라는 진실이 숨겨져 있다.
만수는 이 편지를 햇빛에 비춰보지만 끝내 그 진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이때의 ‘빛’은 곧 '마주하기 어려운 진실'로 읽힌다.
진실은 햇빛처럼 눈부시게 쏟아지지만, 만수는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만수가 충실히 일해온 ‘태양’은 이익 극대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그렇다면 ‘태양’을 자본주의로, 그 빛을 우리가 외면해 온 진실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태양 아래에서 성장해 왔지만, 이제는 그 눈부신 빛을 직면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AI가 기술자를 대체하고, 효율이 인간의 가치를 앞서는 시대.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자동화되고 규율화된 폭력적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아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는 자신만의 언어를 찾은 리원과, 분절된 언어마저 잃게 된 만수의 대비를 통해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은 만수의 모습과 처지를 보라, 자신의 말을 잃고, 귀를 막은 채,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 과연 이것을 진정한 생존이라 할 수 있을까?'
https://youtu.be/7y4Cg86kzpY?si=4tUzEwFp5w1DL3m1
저자
YouTube 영화전문채널 Darksome 등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시나리오와 소설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