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에세이
기리노 나쓰오(지은이) 김수현(옮긴이) 황금가지
내가 타인의 간섭을 일절 받지 않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쓰는 행위는 자신을 뾰족하게 깎아 하나의 무기로 만들어 대상을 치고 들어갈 뿐, 다른 것은 보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 '잔학기' 18쪽
'잔학기'의 저 문장이 소설가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적절한 말일지, 잘은 모르겠다.
그저 어렴풋이 느낀다.
적어도 나에게 소설을 쓰는 일은, 자신을 더 뾰족하고 예민하게 만들어서 실재하는 현실의 문제를 돌파해 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결국 작가가 소설을 쓰고 이야기를 짓는 일은, 실은 매우 개인적인 영역의 일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야기를 쓰는가?
개인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이러저러한 창작을 해오면서 느낀 바로는, 이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세상에는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언어와 문자가 있지만, 그러한 표현들만으로 한 사람의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슬프다'라는 표현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타인은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렵다. 때문에 최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전후사정과 맥락을 설명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슬펐어.
오다가 차에 치인 강아지를 봐서 슬펐어.
오다가 차에 치인 강아지를 봐서 슬펐어. 어릴 적에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거든.
오다가 차에 치인 강아지를 봐서 슬펐어. 어릴 적에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거든. 나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더 잘 따르던.
비단 소설이나 영화 같은 이야기 장르뿐만 아니라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된다.
작가가, 그러니까 우리들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정확한 단어나, 정확한 그림이 아니라 방대한 이야기나 추상적인 그림, 음악의 선율 같은 것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고,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쓴 소설과, 작곡한 음악과, 그린 미술과 같은 예술이 예술가의 의도대로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작가는 왜 이야기를 짓는가'라는 물음에 내 나름의 이유를 답하라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그러니까 너무 답답해서 말을 하고 싶은데, 그 답답함을 해소할 방법이 오직, '이야기' 뿐이라는 것. 다른 방법으로는 온전히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도저히 해소가 되지 않는다.
물론 직업인으로서 숙련된 작가라면 어떤 소재에 대해서 별다른 고민 없이 능숙하게 한 편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첫 소설을 쓰는 경험은 앞서 말한 '표현할 방법의 부재' 혹은 ‘해소되지 않는 감정’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네 경우에도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리라는 기분이 들었어. 불합리한 경험을 겪었던 아이는 반드시 뭔가로 정신의 결함이나 마음의 상처를 메우려는 일을 시도하지. 아닌가? 그래서 결함은 오히려 멋진 거야.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아 어른이 된다는 건 불가능해. 넌 본래 나이보다 어른스러웠고, 아무에게도 고백하려고 하지 않았어. 나는 언젠가 반드시 네가 사실을 말하리라, 아니, 말이나 글로 표현하리라 생각하고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단다. -'잔학기' 193쪽
개인적으로 소설을 쓰는 일에는 시나리오를 쓸 때는 느낄 수 없던 심리적 안정과 자유로움이 있다.
마치 흔들리지 않는 사실을 기록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 감각은 원고를 수정할 때도 이어진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느끼는 인물과 사건을 자신의 언어로 받아 쓰며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어려운 건 그 이야기를 온전히 글로 전하는 데 있어서 부족한 어휘력과 문장력이다.
나는 영화를 누구보다 좋아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러 함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즐기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매일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완성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영화감독이란 정말 특이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첫 소설을 완성했을 때,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작가는 왜 쓰는가 - 제임스 A. 미치너
소설은 결국 불타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물건이라는 점을 가르쳐주었다. 그럼 소설 속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가? 재능 있는 작가가 넣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넣어도 되는 것이다. 그럼 소설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 '작가는 왜 쓰는가' 121쪽
저자
YouTube 영화전문채널 Darksome 등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시나리오와 소설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