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Hereditary
2018 · 드라마/공포/미스터리/스릴러 · 미국
2시간 7분 · 15세
아리 애스터 감독
"만약 헤라클레스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더 비극이었을까? 덜 비극이었을까? - History Teache
영화의 초반, 선생은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헤라클레스의 결점은 무엇일까?”
피터는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앞자리 여학생의 엉덩이를 보고 있다. 앞자리의 여학생이 손을 들고 대답한다.
“교만함. 작품 내내 전조가 제시되는데, 전부 다 무시해 버리니까요.”
그러자 선생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만약 헤라클레스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더 비극이었을까? 덜 비극이었을까?”
선생은 딴짓하는 피터를 발견하고 꼭 집어 물어본다.
피터는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피터를 대신해서 다른 학생이 대답한다.
“더 비극 같아요. 왜냐하면 모두 필연적이라면 인물들에게 희망이 없잖아요. 희망이 없으면 아무 기대도 없고 가망 없는 체스 판의 말 같은 존재니까요.”
이 장면에는 앞으로 펼쳐질 이 영화의 중요한 비밀이 담겨 있다.
‘전조를 무시하는, 선택권이 없는, 체스 판의 말 같은, 비극적인 존재.’
그리고 영화는 이때부터 우리 모두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필연적으로 물려받게 되는 것들에 대한 공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유전, 시작과 끝의 시선
유전의 오프닝은, 애니의 어머니이자 스티브의 장모, 피터와 찰리의 할머니인 엘렌의 장례식을 예고하며 마치 관객들을 장례식에 초대하듯 시작된다.
영화는 나무 위에 지어진 집 밖의 오두막을 먼저 보여주고, 이때 카메라의 시선은 집 안에 지어진 미니어처로 향한다. 미니어처의 어느 방 안이 화면에 가득 차게 되면, 관객은 더 이상 미니어처가 아닌 실제 사람, 피터가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쉽게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이 모호해 보이는 오프닝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다. 때문에 마지막 장면까지 다 보고 나서야 그 연출의 의미를 해석해 볼 수 있게 된다.
유전의 라스트 컷은 파이몬의 숙주가 된 피터와 그를 향해 절하고 있는 신도들이 있는 오두막 장면이다.
오프닝에서 미니어처 속 피터를 바라보며 시작된 영화가, 결말에선 오두막 속 상황을 마치 미니어처를 보여주듯 끝이 나는 것이다.
마치,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조형물처럼 꼼짝할 수 없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었던 피터의 운명이 드러나는 섬뜩한 결말이다. 오프닝에서 미니어처 속 피터를 지켜보던 시선처럼, 오두막 내부를 바라보는 이 전지적인 시선은 영화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악마 파이몬의 시선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피터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해 주는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앞서 소개한 피터의 수업시간이다.
‘작품 내내 전조가 제시되는데 무시한다’는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처럼, 피터는 앞자리 여학생의 엉덩이를 훔쳐보고, 핸드폰으로 마리화나나 피울 문자를 주고받느라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더 비극이었을지 덜 비극이었을지’를 묻는 선생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한다.
역사 선생의 질문과 학생들의 대답은 앞으로 피터에게 펼쳐질 이야기의 중요한 복선이자, 영화 유전의 주제이기도 한 것이다.
“더 비극 같아요. 왜냐하면 모두 필연적이라면 인물들에게 희망이 없잖아요. 희망이 없으면 아무 기대도 없고 가망 없는 체스 판의 말 같은 존재니까요.”
‘가망 없는 체스 판의 말 같은 존재’라는 학생의 대답처럼 결국 피터는 악마 파이몬의 숙주가 되고 만다.
유전 : 물려받아 내려옴. 또는 그렇게 전해짐.
유전의 사전적 정의처럼,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애초에 선택권이 없다., 쌍방향이 아닌 오로지 일방향이다. 때문에 이 ‘유전’이라는 제목은 이 영화에 참으로 적절하며 더 폭력적이고 끔찍하게 다가온다.
영화에는 애니가 자신의 딸인 찰리의 죽음을 미니어처로 재현하는 장면이 있다.
남편인 스티브는 그런 아내의 행동에 기겁하지만, 애니는 그 사고를 보는 객관적인 시각이라고 말한다.
애니가 미니어처를 만들며 보려고 하는 객관적인 시선이란, 결국 이 영화의 오프닝과 라스트 컷에서 보여 주고 있는 시선과 연결된다.
분노나 슬픔 같은 감정을 배제하고, 멀리서 조망하는 냉정한 시선, 그것은 딸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같은 인간의 시선이 아니라 무정하게 내려다보며 관찰하고 있는 전지적인 시선이며, 바로 악마 파이몬의 시선이기도 하다.
유전은 보는 이들에 따라서 여러 가지 감상과 해석이 가능하다.
악마 숭배집단에게 희생된 일가족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고, 엘렌 일가 3대에 걸쳐진 파이몬의 부활 스토리로 볼 수도 있으며, 어찌 보면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목이 잘리는 인물은 모두 엘렌, 찰리, 애니, 세 사람이다.
세 여성의 목은 파이몬을 위한 제물로 받쳐지게 되고, 살아남은 남성인 피터는 파이몬의 숙주가 되어 고통받는다.
이 모든 일들이 남성을 원했던 파이몬의 욕망이라는 점과 파이몬이 남성을 손에 넣도록 도왔던 광신도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에 의해 은밀하게 계승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마치 사회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유전이라는 함의 속에는 부모의 DNA를 물려받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유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함의를 연장하여 영화에서 유전되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더 드러난다.
처음에는 엘렌 일가의 가족력으로 소개된다. 마치 DNA로 대물림되는 것처럼 보였던, 엘렌의 해리성 인격 장애, 애니 오빠의 조현병, 그리고 애니의 몽유병과 같은 정신질환들이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러한 유전이 사실은 파이몬 때문이었다는 결말은 또 다른 방향으로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영화가 말하는 유전은 개인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침투해 온 어떤 힘의 반복이었다.
다시 말해, 이 사회에 대물림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역시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로 영화는 확장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 '유전'은 단순히 가족의 비극을 다루는 공포 영화를 넘어, 한층 깊어지고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저자
YouTube <영화전문채널 Darksome>, 영화/OTT 전문 웹 매거진 <씨네랩> 크리에이터.
영화 리뷰, 그리고 시나리오와 소설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