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사랑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평범하고, 밝았던 아이의 숨겨진 속내.

by 이하율

엄마 말로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밝고 인사 잘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른들께 꾸벅 인사를 했고,


동네 어르신을 만나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아이.


장난감이나 인형을
떼쓰며 사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산을 올라갈 때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꾹 참고 따라오던 아이.


언니에게 놀림을 받고
때로는 얻어맞기도 했지만
반격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맞고만 있던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래서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다.


밝고 착한 아이.

세상 해맑고 행복해 보이는 아이.


하지만 사실

나는
나를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21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꽤 충격적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나는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마치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조금 충격적이었던 사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행복한 순간.

그리고 지금은 하늘에 계신
할머니의 얼굴.


살아 생전
언제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던
그 얼굴만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난다.

하지만 나머지 기억들은


마치 채색된 도화지 위에
물이 쏟아진 것처럼
뿌옇게 번져 있다.나는 어린시절 기억이

마치 파편처럼 흩뿌려져 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는 언제 행복했지?”


하지만
21살의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꽤 착하게,
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때 나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 달 만에
12킬로그램이 늘어 있었다.


매일 밤
공허함을 채우려 먹던 빵.


그 밀가루 덩어리들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너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이제 그만 인정하라”고.


거울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이런 말들이 튀어나왔다.


“왜 이렇게 못생겼지.”
“살 좀 빼.”
“한심하게 또 먹어?”
“넌 앞으로 뭐가 되려고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누구보다 잔인하게
나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너무 익숙한 목소리였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하는 이 말들이

어딘가에서
들어본 말 같다는 생각.


그리고 만약
내가 앞으로도 계속


이 목소리로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면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바뀌어 보기로.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로.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나는 올해
31살이 되었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여대생은

어느덧
두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되었고,


인간의 마음,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결핍이라 할 수 있는


‘중독’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연재는

내가 책에 차마 담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다.


나의 어두운 그림자.


내가 왜 그렇게
나를 미워했는지.


평생 숨기고 싶었던
그 비밀을


처음으로
꺼내어 보려 한다.


사실은
조금 두렵다.


차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다시 마주한다는 것이.


하지만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이해하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미워하던 사람이었고,


지금은

나를 조금씩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사랑하기까지 10년,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아이패드로 처음 그린 그림-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