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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Dec 22. 2020

가난은 새겨져 있다

가난이 와 닿을 때

교인 스무 명 남짓한 시골 교회 목사가 벌어 봐야 얼마나 벌겠는가. 교회에서 눈치만 보고 자란 터라 어릴 때부터 '돈 눈치'도 빨랐던 듯하다. 우리 집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걸 빨리 알았기에 중학생 때 이후로 양친에게 무얼 사달라고 조른 적도 크게 없었다. 가난하지 않기 위해서는, 온 가족의 노력이 필요했다. '가난'이라 명명할 수준까지는 아니었을지라도, '가난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감각을 꽤 오래 지녀 왔다.


그럼에도 가난은 다른 차원이라 생각했다. 가난이 멀지 않다고 느낀 건 갑작스레 서울로 올라오면서부터였다. 내리 기숙사에만 살다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오면서도, 아버지 손을 빌리기엔 염치가 없어 고시원으로 향했다. 유동 인구가 엄청난 홍대 대로변에 떡하니 자리 잡은 고시원에 한 달가량 머무르며 생각했다.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찌든 가난들이 숨어 사는구나.'


이사 갈 집 계약금을 마련하려 허겁지겁 만든 마이너스 통장은 가난을 더 직시하게 했다. 가계부 어플은 마이너스를 인식하지 못해 -450만 원을 +450만 원으로 인식하곤 했는데, 이게 그렇게 싫었다. 내 처지는 마이너스인데, 괜히 희망만 가지게 하는 모양새였으니.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어플은 금세 업데이트됐고, 수치는 마이너스를 정확히 가리켰다. 사람이 참 간사해서, 그건 또 그것대로 마음이 울울했다.

딱 이런 큰 건물에 있는 고시원이었다.

언젠가 교회에서 간 쪽방촌 봉사 날 들은 이야기는 꽤 충격이었다. 보증금 없이 하루에 7000~8000원 돈이면 잘 수 있는 쪽방촌 건물주가 죄다 상류층 사람들이라는 것. 가난한 사람만 더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는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풀어내려고 하면 더 묶여 버리는 빈곤의 사슬을 쥐고 있는 건 결국 가진 자들이었다.


나는 그 사슬 어디쯤 엮여 있을까. 이러나저러나 가난이 와 닿는 날들이 있다. 요즘도 아버지는 종종 습관처럼 '물려줄 게 없어 미안하다'고 말한다. 나야 '빚만 물려주지 말라'고 대꾸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집안 사정을 되뇔 때면 한증막에 들어선 것처럼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더라.


살아온 궤적 따라 가난이 와 닿는 때가 다르고, 가 닿는 지점이 다르겠지. 이렇게 중얼대는 오늘도 일용할 양식은 있었고, 좁은 냉동고는 먹을 것으로만 그득하다. '21세기 대한민국 자취생들에게는 냉장실과 냉동실 크기가 뒤바뀐 냉장고가 필요하다'는 우스개가 있더니만, 이것도 냉장고 딸린 집에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웃긴 말이려나.


성서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습관이 생긴 지 오래다. 그래도 몇몇은 그대로 믿고 싶은 구절들이 있다. 이 순간 이루어졌으면 하는 구절 딱 하나만 고르라면 이걸 고를 텐데.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 도심의 찌든 가난을 신은 알고 있으려나. 하늘도 참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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