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하지 않기로 하면서

밥솥을 사려고 합니다

by 버들

당근마켓에 '밥솥'으로 키워드 알림을 등록해 놓으니 시도때도 없이 울린다. 대부분은 4~6인 가정용, 커다란 쿠쿠 밥솥이다. 집도 싱크대도 좁은 나에겐 부담스러우니, 1인용 밥솥이 올라오기만 기다린다.


밥솥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건, 더 이상 햇반을 사먹지 않기로 결정하면서다. 재활용이 안 된다는 요놈의 용기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졌다. 재택 기간이 길어지고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게 되면서 집에서 요리를 할 일이 더 많아지니, 햇반 용기를 마주할 때가 더 많아진 터다.


그간 햇반을 사 먹어 온 이유는 자명하다. 꺼내서, 열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편리함 때문. 1분 30초면 완성되는 따끈한 밥이라니, 이 얼마나 한국인을 위한 혁신적인 발명인가. 이런 걸 더 이상 먹지 않기로 하다니, 어떤 이가 보기에는 멍청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볶음밥 하기에 햇반이 편한 건 부정을 못 하겠다..

자취를 막 시작했을 때, 집에 밥솥이 없다는 말에 엄마는 '우리 아들 밥도 못 먹고 사는 거니' 싶은 표정으로 "밥솥 하나 사 줄까"라고 말하곤 했다. 햇반을 사 먹는다는 내 말에 아빠는 "그런 거 먹어서 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환경적 고려에 의한 말들은 아니었지만 그때 엄마아빠 말 들을 걸, 왜 햇반을 고집했을까 싶은 마음에 자책을 반복한다.


글을 쓰고 있는데 자취생이 쓰면 편할 거라는 작은 밥솥 하나가 만 오천원에 올라왔다. 거리도 집에서 10분 정도. 냉큼 채팅을 보내 놨다.


찬장을 열어 보니 햇반은 다섯 개 남아 있다. '다섯 번만 더 편하고 말자'고 생각했다. 무거운 쌀을 사 집에 들고 와서, 쌀을 씻고, 불리고, 밥을 안치고, 뜸을 들여서, 그릇에 퍼 담자. 먹고 나면 설거지까지 해 보자. 그렇게 편리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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