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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Mar 27. 2021

재택근무도 권력이다

인생 3할은 일하며 보내니까

운이 좋게도, 나는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재택근무를 종종 해 왔다. 언론사들 다 그렇듯 외근은 일상이었고, 영상을 만들다 보니 회사보다는 큰 모니터가 있는 집이 편했다. 일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어도 장소를 제한하진 않았다. 마감만 잘 맞추면 될 일이었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시도했다. 시도라기보다는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하지 않으면 직원들의 원성을 사기 일쑤 아니었나. 나야 익숙했지만 그 흐름에 올라타는 회사들, 직원들은 꽤나 혼란스러워했을 테다.


'전면 재택근무'는 이직 후에야 해 봤다. IT 기반 스타트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몇 주 동안 출퇴근을 안 해도 된다니 너무 좋았지만, 그 기분은 얼마 안 갔다. 출퇴근은 로그인과 로그아웃으로 구분될 뿐이었고, 시간 감각이 사라져 집중도 잘 안 되곤 했다.


2차 유행이 시작될 때쯤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생각보다 재택근무하는 회사가 많이 없었다. 한창 재택 관련 기사를 쓰고 있던 터라 "왜 안 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충분히 가능한 데도 직원들을 시야 안에 두려고 억지를 부리는 고용주들 태도도 숱하게 목격한 탓이다.

장단이 있지만, 어쨌든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건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

 가지 내가 간과한 , '하려야   없는 이들' 있다는 사실이었다. 카페나 식당, 편의점 알바와 같이 대면하지 않으면 유지가 거의 불가능한 서비스업 종사자거나, 보안이 중요한 금융업에서 일하거나, 갑자기 멈추기 힘든 제조나 건설업 종사자라면 재택근무 자체가 려울 수밖에.


코로나19 감염에 취약콜센터도 그중 하나였다. 은행이나 보험, 통신사들의 콜센터는 수많은 고객의 개인정보를 조회해야 하는데 이를 일반 인터넷망에서 접근하게 하면 유출 위험이 생길  있다는 이유다. 일부 은행이나 보험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시차 근무, 분산 근무를 시행하기도 했다. 재택이 가능하게 근로자 집에 장비를 제공하는 노력도 보였지만 그럼에도 전면 재택근무 시행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업종'은 대표적으로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이 많은 업종들이다. 겉이 번지르르한 공유 오피스에 입주한 IT 회사에 다니는 정규직인 내게 재택근무는 '복지'나 '근로자 건강에 신경 쓰는 회사의 선의' 정도였지, '가능하고 말고'에서 권력의 층위가 생기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헌데 내가 선 데서 몇 계단 내려와 살펴보니, '재택근무'야말로 오늘날 노동이 양극화한 이 나라 풍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청년 여성'들이 노동 현장에서 겪는 문제들을 간간이 취재하면서, 내 권력이 (의도치 않더라도) 꽤나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말로는 이 울타리 밖을 내다보고 싶다고 하면서, 결국 안에 웅크린 채 누리고 있지는 않았던가. 내가 언제나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듯, 나는 언제나 '권력자'일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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