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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Aug 17. 2021

비전공자도 무사히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이도후·김헵시바 디자이너 인터뷰 ②

고졸이나 비전공자들이 취업 과정에서 마주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네트워크의 부재'다. 전공생이 아니니 디자이너인 친구나 선후배가 드물고, 대학에 가지 않다 보니 대학에서 만들 수 있는 여러 네트워크를 꾸려 가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다.


이도후 디자이너와 김헵시바 디자이너 또한 "느슨한 네트워크라도 필요하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고졸 디자이너인 이들이 직무에 곧바로 뛰어들며 경험한 내용을 다뤘다면,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이들이 특별히 전수한 '비전공 디자이너로 현장에서 살아남는 법'을 다뤘다. 인터뷰는 8월 9일 진행했다.


-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전공을 하지 않으면 취업에 관한 정보를 얻는 범위나 수준도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연(?)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사회 안에서, 대학은 그 자체로 네트워크이기도 하고요. 일할 때 네트워크가 참 중요하잖아요.

김헵시바 / 네트워크 정말 있어야 해요. 제가 일하기 시작한 때쯤에 디자이너들이 작업물을 SNS에 올리는 게 트렌드가 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자신과 비슷한 일하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늘었던 것 같아요. 어딘가 소속되는 네트워크는 아니어도 느슨한 네트워크가 가능해진 거죠. 저도 제 작업물 올리면서 랜선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그랬는데, 해외의 한 신발끈 브랜드에서 연락이 와서 페이팔로 50달러 받고 작업해준 적도 있어요.(웃음) SNS를 잘 활용하는 게 좋죠. 계속 쌓이면 자기를 증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시기가 오는 거 같아요. 초기에는 그런 게 없으니까 열심히 하긴 해야죠. 일을 위해 활용하는 SNS 안에서 만큼은 외향적인 게 유리하고요.

이도후 / 회사에서 일할 때는 정신없이 몰입하다보니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깊게 못 느꼈는데, 문득 대학교를 간 친구들의 생활이 너무 궁금해지더라고요. 네트워크를 포함한 회사 밖 사회의 모습이 궁금해져서 퇴사 후에 사이드 프로젝트 모임이나 디자인 스터디 모임들을 미친듯이 찾아서 참여했어요. 느슨한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제가 해보고 싶었던 공부나 취미를 탐색해보는 시간을 가졌고요. SNS에서 내가 관심있는 분야 사람들 팔로우하면서 정보가 계속 유입되는 구조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유지 중이고요.

헵시바 / 인터넷으로 롤모델을 많이 찾아서 친해지려고 하면 좋아요. 저도 인스타에서 질문받는 일이 종종 생기고, 대학 동기들이나 디자이너 준비하는 사람들 많이 질문해 오는데, 질문 받으면 기분도 좋고 정중하게 답해주려고 하게 되더라고요. 클라이언트와 연결돼서 일을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들하고 연결되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 다른 직무들에 비해 디자이너는 특히 더 전공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헵시바 / 예술이라고 생각하니까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대학에도 그런 기조가 있는 듯하고요. 지금 다니는 학교의 친한 교수님 중에, 본인을 디자이너보다는 '디자인을 이용하는 활동가'에 가깝게 정의하는 분이 있어요. 그분은 학부 시절에 디자인마다 이야기를 담고 싶었는데, 교수님들은 '의미 좀 그만 담고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라'고 했대요. 대부분 시각적 표현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교수가 되고, 학생들은 그런 교수들 아래에서 디자인을 배우게 되는 구조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 실무를 경험하면 학교와 달라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요.

보통, 사람들이 '디자인' 하면 '예쁘고 멋지고 힙한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앱의 경험이 유연했다거나 캠페인 디자인 설계가 잘돼 있다고 해도 보통 '디자이너 누구냐'고 생각하진 않잖아요. 그렇지만 막상 일하면서 사람들이 동료 삼고 싶어하는 디자이너는 또 다르거든요. 미적인 데 매몰되지 않아도 되는데… 물론 그런 사람들이 눈에 띄기는 하죠. 인스타 피드에서 눈을 사로잡으니까요.(웃음)


이도후 디자이너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참여했던 어플리케이션 '타임스페이스'.

- 대학 미진학자나 비전공자는 디자이너라는 직무, 또 디자인이라는 일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는 학원에서 툴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는데, 당장 그뒤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어려움을 겪는 것 같더라고요.

도후 / 디자인에도 분야가 많잖아요. 그만큼 툴도 많고요. 비전공자 같은 경우는 우선 툴을 배워야 하니까 단기 학원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어떤 분야로 가고 어떤 디자인을 하겠다 마음먹기 전에, 툴을 배우면서 본인이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살펴봐야 해요. 우선 스스로가 재밌어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쭉 이어나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뭐든지 가볍게 시도해보는 마음으로 많이 보고, 많이 따라하면서 내가 어떤 부분에서 특출함을 보이는지 발견하셨으면 좋겠어요. 정론이긴 한데, 정론인 이유가 있는 거 같네요.

헵시바 / 툴도 '잘' 배웠으면 좋겠어요. 정작 툴 배워서 GTQ(그래픽기술자격증) 따고 끝나면 아깝거든요. 툴은 100% 다룰 필요가 없어요. 내가 머릿속에서 떠오른 걸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으면 되는 거니까요. 온라인 교육 플랫폼들 잘 찾아보면 실무에서 일하는 분들이 하는 강의가 있는데요. 거기서 배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인디자인은 기본으로 해야 하고요. 애프터이펙트도 하면 좋아요.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정하는 게 막연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롤모델을 찾으면 좋아요. 인스타그램에 추천 계정 많이 뜨잖아요. 여러 계정 서핑하면서 '나도 이런 거 하고 싶어' 찾아도 되고, <월간 디자인> 같은 잡지 보면서 어떤 디자인을 볼 때 심장 뛰는지 살피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걸 대학교에서 찾을 수도 있어요. 대학생이 되면 주변에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잖아요. 일하면서 학원 다니거나 수업 듣는 건 집중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공부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대학이든, 혼자 프로젝트 하는 시간이든 가져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이도후 디자이너는 "우선 툴을 배우면서 본인이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후 / 정보를 주고받는 디자인 오픈채팅방이 많아요. 당장 오픈채팅에 검색해 봐도 몇백 명씩 있는 디자인 단체방이 있는데, 작업하다 어렵거나 찾아보기 애매한 부분이면 단톡방에 물어봐도 되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질문하고 답변하는 거 보면서 배우는 게 있을 수 있죠. 

구글이나 유튜브도 적극 활용하세요. 팁을 드리면, 한글보다 영어로 검색하면 더 다양하고 좋은 퀄리티의 영상을 볼 수 있어요. 한국말로 치면 한국말 관련 영상만 뜨잖아요. 디자인 관련 프로세스는 저도 웬만해선 영어로 검색하는데, 콘텐츠의 풀 크기 자체가 아예 달라요. 펜툴을 그리는데 앞서 좀 더 세세한 팁을 알고 싶다면, 'How to draw pen tool Illustrator' 라고 치면 되겠죠.

헵시바 / 일단 너무 겁내지 않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다. 일하면서 배우자.' 일단 일을 벌이고 거기서 필요한 게 생기면 유튜브에 검색해서 찾아보고, 없으면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공부한다는 느낌보다는, 일을 벌이고 거기서 필요한 걸 공부하면, 요즘 많은 팀이 선호하는 유연한 디자이너로 클 수 있어요.

회사 안에선 오랫동안 학습할 시간이 많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빠르게 학습하는 리듬을 키워 놓으면 좋아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학교에만 익숙해진 친구들은 생각이 많고 학술적이니까 효율적으로 일하는 능력은 부족할 수 있거든요. 리듬감과 유연함이 필요한 거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리뷰 받으면서 고치고…

도후 / 구글 크롬 응용 프로그램 중에 서핏(Surfit)이라고 있어요. 디자인 관련 아티클이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 보드를 띄워주는데요. 내 주변을 디자인과 관련한 양식으로 둘러싼 환경으로 만들어가는 게 성장에도 도움 되니까, 이런 툴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보셔도 좋겠네요.

- 디자이너 안에도 다양한 직무들이 있잖아요. 조금 더 자세한 접근법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헵시바 / 사실 제일 효과적인 건 이것저것 시키는 회사 가는 거예요. 메인 직무는 있되, 다른 업무를 경험해 볼 가능성이 많은 팀을 찾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런 경우엔 메인 직무만 잘해내면 다른 업무를 조금 못해도 괜찮거든요. 자기가 가고 싶은 분야가 있다고 하면, 관련된 작은 일이라도 많이 해보면 좋을 거 같아요. 사이드 프로젝트도 좋고요.

BI(Brand Identity) 디자인이라면… 만약 지인이 샐러드 가게를 여는데, 나한테 '메뉴판 디자인'을 요청했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러면 '내 맘대로 만들게 해달라'고 협의하고 BI 작업을 마음껏 해보는 거죠. 냅킨도 한번 만들어 보고.. 그런 식으로 가상보다 '조금 더 실제에 가까운' 일을 하는 게 중요해요. 대학교에 들어와 보니까 과제하면서 얻는 게 많더라고요. 그런 맥락에서 자기에게 과제를 잘 내주면 좋을 거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고 해보는 거죠.

도후 / 맞아요. 막연한 가상보다는 실제로 구현해보고 싶은 아이디어 주제들을 적고 차례대로 시도해 보는 게 좋은 것 같고요. 아무래도 개인 작업보다는 외주 작업이 실무 훈련에 더 도움이 돼요. 중소기업 같은 경우는 인력 리소스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까, 그래픽 디자인, 웹 디자인, UX 디자인이 할 일을 다 시키려는 경우가 있잖아요. 너무 섞인 건 제외해야겠지만, 어느 정도 감당이 될 정도라면 해보는 게 좋을 수 있어요. 값진 경험으로도 축적되고, 또 하나의 가능성이 발견돼서 커리서 패스가 어떻게 확장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 꿀팁을 엄청 쏟아내시는군요. 저도 이런 걸 바랐어요. 헵시바님은 얼마 전에 대학에 들어갔다고 들었어요. 일하다가 대학에 가니까 어때요?

헵시바 / 취업하고 대학 온 제 루트가 맘에 들어요. 사실 객관적으로 봐도 대학교는 꽤 비싸잖아요. 가성비를 잘 뽑아 먹어야(?) 되는 거 같은데요. 입시 미술하다가 쌩으로 올라가면 왜 배우는지 잘 모르는 순간이 생기고, 그걸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교수님들도 많이 없고… 그런 상황에서 대학교 가면 가성비가 안 나올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일하다가 학교 오니까, 어떤 점에서 성장하고 싶은지 뾰족하게 아는 상태로 배울 수 있어요. 가성비 좋게 다니는 느낌이 있거든요. 별로인 수업이면 'F만 받지 말자'라고 과감히 버릴 수 있고요. 경험이 있으니까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좋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저는 이 루트도 추천하고 싶어요.

       

김헵시바 디자이너는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어떤 점에서 성장하고 싶은지 뾰족하게 아는 상태로 배울 수 있다"는 말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엿보인다.

- 대학도 중요한 경험인 건 부정할 수 없겠네요. 비전공자나 대학에 가지 않은 디자이너들에게 또 중요한 지점이 있을까요?

헵시바 / 디자인 아닌 일을 경험해보는 것도 도움이 돼요. 온라인 퀴퍼 작업하면서 전체 리드도 맡았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거든요. 중심 메시지가 뭔지 계속 생각하면서, 넓게 보게 되더라고요. 기존에 재미있던 데만 갇히지 않고, 다양한 데서 재미를 찾아야 해요. 긍정적이지 않으면 번아웃 오기가 쉬워요.

도후 / 맞아요. 디자이너는 번아웃이 쉽게 올 수 있는 직종이거든요. 자기랑 일, 작업물을 쉽게 연결하다보니까요. 작업에 내 감정은 배제하고, 분리해서 보는 시선을 갖는 게 중요해요. 그때부터 비로소 성장하는 것 같아요. 

헵시바 / (자신과 일을 잘 분리하면) 누가 피드백을 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죠. '이건 내 스타일인데 왜 침범하지?' 이렇게 생각 안 할 수 있고요. 한동안 그게 밈처럼 유행했잖아요. 디자인 해 놓으면 윗선에서 바꾸고 더 위에서 바꿔서 결국 막 이상한 디자인 돼 있고... 근데 그런 상황을 너무 나쁘게만 생각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왜 바꾸자고 하는지 들어보면 합리적인 이유일 때도 있거든요. 그런 이유들과 디자인적 완성도를 잘 조율해 나가는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너무 닫혀있기 보다는요.

도후 / 어떤 마케터분은, 디자이너가 '스타일에 맞지 않아서 수정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면 입장이 퍽 난처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내용이 눈에 안 들어와서 추가하거나, 시각적으로 안 보여서 키우자는 건데, '스타일'로 가니까 핀트가 어긋나는 거죠. 가장 잘 보여야 하는 정보를 체크한 뒤 디자인에서 중간 타협점을 찾아야 해요. 무엇보다 다른 직종의 사람들의 관점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 작업이 아니라 회사에 소속된 이상 '공동의 작업'이라는 인지가 중요한 거 같아요. 만약 회사가 내 성장을 더디게 하는 것 같다면 혼자서 회고도 잘해야 해요. 일에서 떨어져 나와서,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고요.

- 대학 진학을 아예 하지 않거나, 또는 다른 전공을 한 상황에서 '디자이너'라는 직무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헵시바 / 자신감 가져도 되는데, 대신 자기를 담백하게 볼 수 있어야 해요. 담백하게 보려면 일을 많이 경험해야 하고요. 다 연결돼 있네요.(웃음) 자기 확신이 중요한 거 같아요. 나한테 뭐가 없더라도 결정한 것만으로도 용감할 수 있고, 자기 안에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되자'는 결정을 한 거잖아요. 자기 확신을 가지되, 그 확신의 근거가 뭔지 잘 살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후 / 디자인 전공자라 해도 처음에는 디자인의 D를 모르는 사람이었을 거잖아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예체능은 특성상 본인의 재능이 크게 관여되는 것 같은데, 디자인은 그중에서도 예외라고 생각하거든요.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꾸준함이 재능인 거죠. 꾸준하게 하기 위해서 본인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또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나만의 목표를 갖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신 거라면, 충분히 멋지게 잘 해내실 거라 생각합니다. 파이팅!


이 인터뷰는 잡플래닛 <컴퍼니 타임스>에도 게재된 콘텐츠입니다.


김헵시바 디자이너 ▶︎ Instagram. @hepzzzzi / @hepzi.works(작업 계정)
이도후 디자이너 ▶︎ Behance(작업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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