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년이 온다
다양한 시점을 통해 확보한 형식과 내용의 아름다움
#한강 #소년이온다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소설(한강의 '소년이 온다')을 읽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이 소설의 채택하고 있는 변칙적인 'perspective'(시점..이면서 동시에 관점)였는데, 그것이 단지 형식상 실험적인 시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제 의식과 감동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훌륭했다. 몇 가지 포인트를 살펴보면,
1.
소설의 1장에서 2인칭으로(주인공인 소년을 "너"라고 지칭하며), 그리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서술이 전개된다. (이 때 살짝 버지니아 울프가 연상됐다.) 그런데 2장에서는 소년을 "너"라고 부르는 '나'가 1인칭 나레이터로 등장하는데, 문제는 이 '나'가 사람이 아니고, 게다가 하나의 개체도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2장의 시작이 "우리들은"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1인칭이지만 개체를 초월한 (혹은 초월하고 싶어하는) '연대한 우리'라는 복수의 1인칭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이 이론적이고 형식적인 파격에 초점을 맞췄다면, 한강의 서술 전략은 그것을 단지 테크닉에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게 적용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영혼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이니까, 5.18 사건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한이 맺힌 영혼의 관점이니까, 당연히 의식의 흐름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시각으로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절묘하다는 것이다.
2.
Perspective는 결국 저자-나레이터-캐릭터-독자 사이의 거리감을 얼마나 가까이, 혹은 멀리 설정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나레이터의 서술을 완전히 신뢰하게 만들것인지,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일것인지,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하게 만들것인지, 한꺼풀 감정을 숨긴 상태로 바라보게 할 것인지 등등..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서술 시점이 계속 상황에 따라 바뀐다는 점은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더욱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비록 이 소설이 직접 다루고 있는 사건의 범위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5.18을 겪은 한 소년과 그 소년을 기억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시점을 넘나들며,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그 시절을 살았던 것처럼 5.18을 이해하게 된다.
3.
이 소설은 극적인 기승전결을 시점의 변화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 사건의 흐름 자체는 기승전결의 구조가 뚜렷하지 않다. 소년을 중심에 두고, 그 주변을 배회하듯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런식으로 플롯을 짜면 자칫 소설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방해하기 쉽다. 기승전결이 없는 이야기는 '생각할꺼리'는 줄 수 있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변칙적인 시점으로 인해 잃어버린 기승전결 구조를, 다시 그 시점을 통해 확보한다. 2인칭, 1인칭, 3인칭을 넘나들며, 감정의 거리감을 조율하다가, 6장의 소년의 어머니 시점으로 서술이 진행될 때 독자는 그 감정에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게 된다. 나레이터와 독자의 거리가 좁혀지고 소년을 잃은 엄마의 감정에 몰입하는 순간, 우리는 플롯의 절정을 경험하게 된다. 사건의 진행이 아니라 감정의 거리를 변화시키는 서술 방식을 통해서.
4.
소설은 관점의 예술이다. 현대 소설로 올수록 더욱 그렇다. 동일한 이야기를 누가, 어떻게 전달하냐에 따라 그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신문 기사, 회사의 보고 자료, 심지어 아카데믹한 논문에서도 동일하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어떤 관점을 갖는가'에서 시작되고, 또 그것에서 완성된다.
불행히도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너무 가까이서 볼 때는 그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 모두에서 거리가 생길 때, 더 분명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소설은 'perspective'를 중요시하고 있다.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단호하게 내려준다. 이제 이 정도면 충분한 거리가 생기지 않았냐고, 이 정도면 모호할게 없지 않냐고 말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5.18이라는 개별 사건을 넘어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 주제를 계속 환기시킨다. 마치 영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것처럼. '양심이라는 빛이 머리에 박히는 그 경험'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한 캐릭터들처럼. 그러면서도 보편성에 의해 개별성이 억압되거나 추상화되지 않도록, 성실하고 구체적으로 연결점을 제시한다.
이 모든 메시지들이 '다양한 시점'이라는 서술 기법을 통해, 가장 적절하게 전달되고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이 소설의 구조적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