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보여주는 부조리극
오프닝 씬의 만수(이병헌)의 대사 "다 이루었다"로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점은 관객이 이제부터 어떤 레퍼런스 텍스트를 떠올려야하는지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뱀, (사과)나무, 유혹에 넘어가는 여자의 상, 뿌리를 이루고 있는 원죄, 그리고 죄악을 정당화하며 세워진 성공의 빛.. 이런 요소들의 은유와 상호 관계를 천천히 곱씹어보며 이 영화를 즐겨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중간중간 위화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주인공이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취업 경쟁자들을 살해하기로 결심한다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이 결심 과정에 대한 심리적, 논리적 근거가 디테일하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만수의 생각에 대해 100% 몰입하여 감정이입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와 논리적으로 유사한 사고를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설정이 허술함이 아닌 의도적 부조리함으로 받아들여진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어쩔수가없다"는 정당화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결론인지 보여준다. 내 딸을 위해 다른 딸 가진 아비를 죽이는 것, 이미 둘을 죽였기 때문에 죽일 필요가 없어진 또 다른 사람을 죽여야하는 것, 기계화에 의해 해고된 자가 기계화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것.. 그 모든 역설적인 결정의 핑계로 우리는 어쩔수가없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이 관점은 인간적인 층위에서 머무르지 않고 확장된다. 그럼 취업 경쟁자를 죽이는 것은 안 되고, 월남전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 또는 돼지를 산채로 매장하거나 통돼지 바베큐를 해먹는 것은 문제가 없는가? 나무를 자르는 것은 괜찮은가? 이런 질문들이 마지막에 남게 된다.
극중 주인공의 아내인 미리(손예진)는 마지막 면접(살인)을 마치고 온 남편을 안아주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지 말지." 이 대사는, 선한 의지로 악함을 행사하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말하는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 '헤어질 결심'에 비하면 덜 미학적이고, 더 사회적인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헤어질 결심'이 훨씬 재미있었다. 형식이나 연출적 특성상 서스펜스의 밀도가 떨어지기도 하고, 너무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다소 난삽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좋고, 또 사용하고 있는 은유적 장치들도 좋은 즐길거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