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건 아니고. 아직 아이디어 ‘차원’이야.”
회의실 공기는 얼어붙고, 한숨 섞인 묵음이 책상 위에 흩어진다.
많은 리더는 ‘큰 그림을 그린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창의적, 발산적 사고의 주인공이라 믿는다. 말만 들어도 설레는 비전, 혁신, 디스럽션, 블루오션…. 하지만 늘 흐릿한 스케치다. 혼돈(chaos)을 창의성(creativity)으로 착각하고 인정하면, 조직원들은 그 혼돈 속에서 시간표를 만들고 예산을 짠다.
“팀장님, 이건 기술적으로 어렵습니다.”
“자네는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큰 그림 좋아하는 리더가 이렇게 말한다면 답이 없다. 큰 그림이라는 건 최소한의 선과 색을 갖춰야 한다. 도화지에 연필 자국 하나 없이 느낌만 말하는 건 낙서조차 아니다.
조직은 리더의 브레인스토밍 노트가 아니다. 물론 비전은 필요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팀원에게는 그냥 일거리일 뿐이다. 이 일거리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드는 회의 시간, 초과근무, 프로젝트 포기, 그리고 팀원의 번아웃도 모두 비용이다.
팀원이 영혼을 갈아 넣은 덕분에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꿈’이 그나마 형체를 갖추게 되었을 때 리더는 말한다.
“결국 되잖아.”
큰 그림 정도는 ChatGPT에게 물어보면 된다.아니면 ChatGPT가 ‘큰 그림을 그리게’ 하는 프롬프트를 짜면 된다. AI는 빠르게, 넓게, 정확하게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여전히 조직에는 그저 이야기만 하고 잊어 버리는 리더가 넘쳐난다. 느릿한 직관, 오랜 경력, 감이라는 이름의 혼돈보다 지금은 작고 정확한 설계가 필요하다. 그림 없이 물감을 요구하는 리더는 뒤떨어진 존재다.
‘혁신은 경계를 허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은 낡았다. 창의성은 아이디어를 내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내뱉은 어설픈 생각을 다듬고, 구체화하는 데 더 많은 창의성이 필요하다. ‘광기(狂氣)’가 아닌 창의성은 적절한 제약 조건 안에서 발현된다. 시스템, 룰, 목적, 도구, 인원. 이 모든 게 명확하게 정해졌을 때, 팀원은 몰입하고, 창의적으로 움직이며 결과를 낸다.
진짜 리더는 큰 그림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그리는 사람이다. 존재하지 않는 전략을 쫓으며, 조직을 창의성으로 포장된 '노이즈 랩(Noise Lab)'으로 만드는 리더. 너무나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