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대한 조금은 학술적인, 또 조금은 문학적인 접근
기후위기(Climate crisis),
누군가는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단어는 아무래도 '기후위기'이다.
지구온난화는 현재 지구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환경적 현상을 설명해주지 못하고,
기후변화는 단어 안에 그 심각성이 내포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Crisis라는 단어가 주는 위험성은 우리가 좀 더 즉각적으로 움직여야만 할 것처럼 만든다.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해결책이 필요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다.
지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라이브러리가 구축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라이브러리는 (1) 한 개인의 사색, (2) 집단 지성, 그리고 (3) 이들의 연쇄에 의해서 빼곡해진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적기 시작한 이유이며, 다시 말해 이 글의 목적이다.
나는 지금껏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데에 힘써왔다.
'전기화학적 이산화탄소 환원 반응'이라는 주제로 학위를 받았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학술지 논문을 게재하였다.
(전기화학적 이산화탄소 환원 반응에 대해서는 훗날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
그래서 나에게 이산화탄소란 애증의 존재다.
수년간 논문과 학술 서적을 헤집으며 '이산화탄소'라는 분자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부분을 알지만서도
이 녀석이 실제로 어떻게 온실가스로 기작하는지,
이 녀석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지,
현재 이 녀석에 의한 기후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만 인지하고 있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내가 일회용 컵을 한 번 안 썼을 때,
페트병 하나를 분리 배출 했을 때,
하루 한 끼의 식사를 걸렀을 때,
어느 정도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억제되는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감도 없는 상태이다.
또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저감하기 위한 연구에 혈안이 되어있으면서도
실험복을 벗은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육식을 즐기며 탄산음료를 곁들인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복잡한 생각들, 지식들, 그리고 거짓 정보와 진실들.
이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해내기 위해서는 글을 적고 한데 모으는 수밖에 없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
많은 논문, 뉴스기사 등에서 이산화탄소를 표현하는 단골 문장이다.
이건 지구라는 판 위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추리게임이다.
범인이 정해져 있을지도, 그렇지 않을지도,
또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렴 명심해야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