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정교사들>을 추천하며
‘가정교사들’이라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제목, 그리고 부연으로 덧붙여진 배우 정호연의 ‘울타리를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말은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붉은 색의 책 표지 또한 내게는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이런 기대들과 함께 평범치 않은 이야기의 전개를 어렴풋이 상상하며 책장을 넘겨갔다.
오스퇴르 부부가 사는 가정집에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라는 가정주부가 함께한다. 가정교사로 들어온 만큼 집을 가꾸고 부부의 아이를 돌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지만 그들은 일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다. 창틀 넘어 다른 곳을 훔쳐보거나, 남자를 사냥하는 것, 파티를 벌이는 것에 더 포커스를 맞춘다.
바라는 것이라고는, 그를 빼앗긴 이 위로할 수 없는 몸들을 그가 위로해주는 것뿐이다.
감미로운 손길로, 감미로운 페니스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자궁을 진정시켜주기를 바랄뿐이다.
읽으며 주위를 의식하게 될 정도로 아주 원색적이고 노골적으로 이들의 행위가 설명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정교사들의 생각과 행동에 이입하기보다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라는 한 발짝 떨어진 입장에서 이들을 살펴보게 된다. 책의 서술 방식도 가정교사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기보다 “~인 것처럼 보인다.”, “~하게 될 것이다.”로 끝맺음 지어지며 추측과 짐작을 하게 만든다.
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즐긴다. 건너편에 사는 노인이 가정교사들을 망원경으로 몰래 보곤 하는데, 이들은 옷을 벗고 신나게 춤을 춘다. 오히려 노인이 당혹스러움을 느낄 만큼 전혀 개의치 않고 움직인다.
처음엔 조금은 놀랍기도 했지만 읽다보니 오히려 자유분방한 여성들의 성적 욕구가 통쾌감을 선사한다. 여성들의 이야기는 쉬쉬해야할 대상이 아니고, 은유적으로 아름답게만 표현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알게 모르게 학습된 관념들로부터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따금 떠나는 척을 하기도 한다. 일을 그만두고 집을 떠나는 듯한 연극을 벌인다. 그럼 집주인들은 가정교사들을 뒤쫓아 따라나가며 애원한다. 여기서 이들은 색다른 재미와 쾌락 통쾌감 등을 느끼며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가정교사들의 행동들은 일반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종잡을 수 없다. 왜 그럴까에 대한 답을 내리기보다 그냥 그저 일어나는 일들을 멀리서 지켜봐야할 것만 같다. 의문을 품기보다 순간 순간 벌어지는 일들을 느끼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위험해, 그만둬 라고 이들을 말릴 법도 한데, 그저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멍하니 이들을 지켜보는 나를 발견한다.
그녀가 아직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정원은 줄어들고, 남자아이들은 서로의 몸 위로 곤두박질을 쳤으며, 집의 벽은 사라지고, 오스퇴르씨는 시가를, 오스퇴르 부인은 잿빛 드레스를, 어린 하녀들은 들고 있던 접시를 잃어버렸다.
엘레오노르가 있던 자리에는 가녀린 꽃 한 송이가 두 개의 조약돌 사이에 피어있었고, 로라가 있던 자리에는 도마뱀 한 마리가 재빠르게 달라나고 있었다.
책의 말미쯤 노인은 더 이상 가정교사들을 지켜보지 않는다. 이유는 지겨움이다. 그러자 가정교사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품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작아지고 있어”, “우리는 녹아내리고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존재가치를 잃고 이들은 영영 사라진다.
본인들도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으로부터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내고 있었을까. 타인의 시선이 거둬지니 불안과 초조를 경험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장기간 지속된 타인의 시선은 이들에게 더 이상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시선은 자신들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요소였을 것이고, 약간의 벅찬 재미를 느끼게 하는 포인트였을 것이다. 자신들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곱씹게 하는 것이 바로 그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시선은 쾌감을 넘어 하나의 울타리였을 것이다.
<가정교사들>은 처음 분위기에서 느꼈던 것처럼 묘한 분위기 속에 막을 내렸다. 책을 덮었을 때 보이는 붉은 표지가 그 여운을 더한다. 내가 쳐둔 울타리, 나도 모르게 내가 가둬졌던 울타리를 둘러보게 한 책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걸까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모르겠으나, 내가 느낀 바로는 모두가 울타리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는,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울타리 밖의 세상이 두려워 자기 위로를 되뇌이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질문을 던져본다.
배우 정호연이 캐스팅되어 영화화 되는 <가정교사들>. 어렴풋이 상상하며 읽은 이 환상적이고 기묘한 분위기가 어떻게 구현될지 더욱 기대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