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던 '읽는 그림'에 대하여
예술작품을 잘 감상했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작품을 잘 보고 잘 읽었을 때다. 이 두 가지가 균형 있게 충족되어야 작품을 온전하게 이해한 느낌이 든다.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눈으로 의도를 파악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내막을 이해해야만 어렴풋하게 작품과 친해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꼭 전시를 볼 때 작품해설을 읽어보려 한다. 작품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을 파헤치는 재미가 있다. 그런 나의 니즈에 부합하는 ‘이야기 미술관’을 만나게 되었다. 고전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는 학교 수업에서, 다양한 미술사 책에서 읽었음에도 이창용 저자가 풀어주는 미술사가 궁금했다. 톡파원 25시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미술관과 미술작품에 대해 재밌고 쉽게 해석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책으로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였다.
책은 크게 ‘네 가지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감’, ‘고독’, ‘사랑’, ‘영원’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 안에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이 분류되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랑의 방에는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클림트의 <키스>, 샤갈의 <이삭의 희생>, 밀레의 <기다림>이 담겨있다. 독자들에게 다채로운 사랑의 모습들을 선별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으로 채워진 네 가지의 방을 다 다녀오면 다양한 감정들을 흠뻑 흡수한 느낌이 든다.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감정들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고독의 방에 있는 이중섭 작가의 <달과 까마귀>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가족들과 떨어져있던 시기에 고독한 시기를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처음 작품을 봤을땐 그저 어둡고 우울한 작품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당시 작가의 상황은 아내와 아이들이 일본으로 먼저 떠나있고,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녹아들어있는 작품이었다. 일본에서 까마귀는 길조를 뜻하고 까마귀 한 마리가 가족들의 곁으로 날아가고 있다.
가장 고독한 시기에 고독을 이겨내고자 그린 작품이라니, 그저 단순한 고독함으로만 여길 뻔 했던 작품을 당시의 상황과 시대적 분위기에 대한 해석으로 다르게 읽혔다. 작품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해보는 것도 참 즐거운 향유이지만 그 본질적인 의도를 꿰뚫어 통찰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향유라고 생각된다. 나는 작품의 내막을 알게 됐을 때 작가와 한껏 더 친해진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사랑의 방에 있는 장 프랑수아 밀레 <기다림>이라는 작품도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노을이 내려앉고 한 여자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이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애처로운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서 그 기다림의 대상이 나타나주었으면 한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 ‘토빗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도저히 극복이 되지 않는 가난을 떨쳐내고자 아들에게 먼 곳에 맡겨둔 돈을 찾아오라는 심부름을 보냈고,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죄책감과 걱정 등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작품이다.
밀레 역시 화가가 되고자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와 어머니를 두고 먼 길을 떠나게 된다. 할머니의 부고소식에도 밀레는 고향으로 돌아갈 돈이 없었고, 홀로 남겨진 어머니가 밀레에게 그리움의 편지를 보내도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고 가난으로 허망하게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냈다. 밀레는 자신의 상황이 ‘토빗기’와 비슷하여 감정을 담아 작품을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더욱 절절하고 쓸쓸한 느낌이 묻어난다. 가족을 향한 애처로운 마음과 미안함,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처럼 책 <이야기 미술관>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소개한다. 고흐가 고갱을 환영하며 그린 <해바라기>연작들, 피카소가 앙리마티스를 뛰어넘겠다며 심혈을 기울인 <아비뇽의 여인들>, 비극적인 오필리아의 이야기에 진심을 쏟고자 작품 속 인물의 표정과 꽃에도 심혈을 기울인 밀레이의 <오필리아> 등 작품 속 숨겨진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야기를 알고 보니 작품을 가만히 더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가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을 함께 느껴보고자 했고, 숨은 의도를 발견하고자 작품 구석 구석을 바라보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만큼은 스쳐가는 작품이 아니라, 마음에 깊이 박히는 작품이 된 것 같다.
더불어 미술사에 대한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충분히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어렵지 않은 말과 표현들이 책의 재미를 높인다. 예술 작품에 이제 막 재미를 느끼는 입문 단계에 더욱 재밌게 읽힐 책이다. 이야기 미술관을 통해 예술과 가까워지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